kt의 차세대 에이스 주권(22)이 오는 3월 열릴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다. 다만 한국 대표팀은 아닌, 중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대회에 나선다. 주권의 활약상은 물론 그간 대표팀에 대한 야구계의 상식을 바꾸는 특이한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kt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주권의 중국 대표팀 합류 소식을 알렸다. 주권은 중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2005년 한국으로 건너와 귀화했다. 조부모의 혈통까지 인정하는 WBC 대회 규정상 한국과 중국 대표팀 모두에서 뛸 수 있는 자격이 있다. 당초 주권은 중국 대표팀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으나 존 맥라렌 중국 대표팀 감독의 지속적인 러브콜에 결국 출전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소속팀 kt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승인했다.
과정과 결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국적을 가진 선수들도 다른 나라의 대표 선수로 뛰는 장면이 적지 않았던 WBC다. 애당초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규정 자체를 느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이크 피아자는 1회 대회 때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뛰었다. 3회 대회 당시 이탈리아 대표팀이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제도가 한 몫을 거들었다. 심지어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1회 대회는 미국 대표팀 소속으로, 2회 대회는 도미니카 대표팀 소속으로 나섰다.
만약 주권이 한국과 중국의 제안을 동시에 받아 중국을 택했다면 논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제안은 없었고, 동시 러브콜이었다면 중국을 택했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한국과 맞대결을 펼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고려된 선택이었다는 후문이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처럼 국적을 철저하게 따지는 대회가 아니기에 가능한 그림이다. WBC가 아닌 대회에서 주권은 무조건 한국 대표팀으로만 대회에 나갈 수 있다.
어쨌든 화제가 된 주권의 사례는 그간의 상식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간 대표팀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최고 선수들의 모임’이었다. 물론 이 명제는 지금도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그러나 적어도 WBC에서는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당장 메이저리그(MLB)에서 뛰는 한국계 2·3세의 선수들, 이른바 ‘쿼터 코리안’들이 적지 않다. MLB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는 없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활용성을 가진 선수들이 있다.
그러나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이들은 관심 밖이었다. 이번 WBC 선수 선발 과정에서도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다. 한 관계자는 “기량들이 우리 선수들에 비해 뛰어나지 않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논의된 적도 없으니 흥미를 모을 만한 결정 과정도 필요 없었다. 중국은 반대였다. 객관적인 전력이 떨어지는 중국 대표팀은 투수 하나가 급했다. 주권은 물론, 파나마 국적의 브루스 첸은 조부모의 국적에 따라 중국 유니폼을 입는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중국이 더 유연하게 대회에 대처했다고 볼 수 있다.
WBC는 야구의 세계화를 지향한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며 서로의 플레이를 보고 배운다. 그러나 전형적인 국가대항전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도 곱씹을 대목이 있을 수 있다. 당장 중국처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닌, 사고의 유연성을 좀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결과에 너무 집착하는 것보다는 대회를 현명하게 이용하는 과정 또한 살펴볼 필요가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