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상중이 없었다면, 과연 ‘역적’이 이렇게 빛날 수 있었을까.
지난 6일 오후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에서는 조참봉(손종학 분)을 죽이고 옥살이를 하는 아모개(김상중 분)와 아모개를 압박하는 참봉부인(서이숙 분)의 대결이 벌어졌다.
이날 아모개는 아내가 출산을 하다 숨을 거두자 조참봉을 죽였고, 참봉부인은 그를 관아에 신고한 후 아모개의 아내 금옥(신은정 분)이 조참봉의 숙부 조생원을 유혹한 것 때문에 아모개가 앙심을 품었다고 거짓 증언했다.
아모개는 강상죄에 살인혐의까지 있어 교수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아모개의 주변 사람들이 힘을 보태고자 증언에 나섰지만 모두 묵살됐다. 거기에 참봉부인은 아모개의 아들 길동(이로운 분)이 아기장수라는 비밀을 알고 그에 피가 떨어지는 생고기를 안겨 호랑이 숲으로 밀어넣기도 했다.
위기의 아모개와 길동 부자는 모두 살아남았다. 길동은 호랑이 숲으로 들어갔지만, 결국 살아서 돌아왔다. 아모개는 나라에서 폐비와 내통한 자들을 잡아들인다는 사실을 알고, 과거 조참봉이 폐비 윤씨와 내통했다는 것을 고발하겠다고 참봉부인에 밝혔다. 아모개를 옥에 갇히게 한 강상죄의 칼날이 참봉부인에게 향한 것이다.
참봉부인은 끝내 아모개가 옥에서 나올 수 있도록 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아모개 자네한테도 미안하게 생각하네”라고 고개를 숙였다. 횡포를 부리던 양반에게 사과까지 받아낸 아모개는 앞으로 조선을 장악할 대부의 모습을 보였다.
이날 가장 빛났던 장면은 아모개와 참봉부인의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기싸움이었다. 아모개는 아내와 아들을 위해 다른 사람이 되기로 했고, 그 첫걸음으로 참봉부인과 격돌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를 압박하는 아모개와 참봉부인의 설전은 김상중과 서이숙의 베테랑 연기가 아니었으면 이렇게까지 빛날 수 없었던 명장면이었다.
김상중이란 배우는 아모개라는 캐릭터를 완성시킨 마지막 퍼즐이었다. 1회에서 아모개는 아들들과 아내에 늘 허허 웃고, 흉폭한 주인에게도 늘 머리를 조아리는 평범한 노비였다. 세상의 흐름 속에서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아모개가, 아내의 죽음으로 결국 세상을 거스르는 자로 일어나게 된 것.
김상중은 아모개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시청자가 온전히 아모개에 이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의 변화를 만든 건 긴 대사가 아닌, 눈빛과 행동이었다. 후반부에 아모개가 참봉부인에 강상죄의 ‘강’자를 언급하며 놀리는 장면은 통쾌함 그 자체였다. ‘발산’이 아닌 내부에서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김상중 특유의 묵직한 연기가 아모개의 서사를 완성시킨 것.
평범한 드라마였다면, 노비인 아모개가 죽어 이를 가슴에 품은 길동이가 세상에 반격을 나서는 게 보통의 줄거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모개는 멀쩡하게 살아서 옥을 나왔고, 양반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초반부터 반전의 역습이다. 이처럼 통쾌한 사이다극에 김상중이란 명품 배우가 붙으니 시너지 효과가 날 수밖에. 과연 ‘역적’은 지금의 기세를 이어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 기대감이 모아진다. / yjh0304@osen.co.kr
[사진] ‘역적’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