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여읜 아이는 아버지까지 감옥에 갇히자 제 몸만 한 갓난쟁이 여동생을 늘 업고 다녔다. 거기에 자기보다 힘이 센 동생까지 이끌고 아버지를 보러 갔다. 아버지가 “담부턴 오지 말어”하면 안심하라는 듯 웃어 보이며 어른스럽게 “아부지 진지 부쳐 드려야지라.”
MBC 월화특별기획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이하 ‘역적’)(극본 황진영/연출 김진만, 진창규/제작 후너스엔터테인먼트)은 작은 장면, 대사 한 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모든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한다. 분량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캐릭터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특히 아모개 일가의 장남 길현(아역 이도현 분)에 대한 시청자의 애정이 예사롭지 않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법 없이 묵묵하게 부모와 동생을 살뜰히 보살피는 길현에 장남 장녀인 시청자의 응원과 사랑이 쏟아지고 있는 것.
아버지가 돈 벌러 먼 길을 떠나는 순간 동생 길동(아역 이로운 분)은 엉엉 울면서 “내가 좋아하는 떡이랑 꿀엿 사다 주씨시오”라며 투정을 부렸지만 길현은 차마 입을 열면 울음이 튀어나올까 소리 없이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며 꾸벅 인사를 할 뿐이다. 아버지 아모개(김상중 분)가 떡과 꿀엿을 사 돌아오는 순간도 마찬가지로 “아버지 오셨다”고 흥얼거리며 온 동네방네를 누비는 길동과는 다르게 그간 쌓아놨던 그리움과 밀려오는 반가움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깊게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아역 배우 이도현의 연기와 맞물려 애잔함의 진폭이 더욱 커진다. 이도현은 어린 길동을 연기하는 이로운이 깜찍함으로 무장해 시청자에게 사랑받을 동안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수수하고 묵묵한 연기로 작품을 든든하게 지탱한다.
길현 뿐만이 아니다. 아기 장수로 태어난 아들을 지키기 위해 씨종의 운명을 거스르는 아모개는 물론이고, ‘한국의 틸다 스윈튼’으로 꼽힐만한 서이숙이 연기해 더 악랄한 참봉부인, 죽는 순간까지 아이와 남편 걱정뿐이었던 금옥(신은정 분), 아랫사람 이야기에 갈대처럼 휘둘리는 무능한 이현감 등 찰나의 순간만으로도 시청자의 마음을 훔치는 캐릭터가 ‘역적’에는 가득하다.
시청자를 사로잡는 캐릭터의 향연, ‘역적’은 허균의 소설 속 도인 홍길동이 아닌, 연산군 시대 실존 인물 홍길동의 삶을 재조명하는 드라마로, 폭력의 시대를 살아낸 인간 홍길동의 삶과 사랑, 투쟁의 역사를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parkjy@osen.co.kr
[사진] 후너스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