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영화 ‘공조’(김성훈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의 흥행세가 무섭다. 지난달 18일 개봉될 때만 하더라도 과연 조인성과 정우성이 어깨를 나란히 한 ‘더 킹’의 기세를 어떻게 넘을 수 있을지 관심을 끄는 가운데 살짝 약세를 보였지만 설 연휴를 기점으로 역전하더니 이젠 독주체제다.
이런 추세라면 '1000만 관객'이란 설레발이 서서히 가시권이다. 배급사도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체인 CGV와 형제인 CJ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제작사인 JK필름의 수장 윤제균 감독은 처음으로 3편의 1000만 영화를 보유한 최초의 감독 겸 제작자가 된다.
우리 극장에서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명량’부터 ‘겨울왕국’까지 총 16편이다. 그 중에 윤 감독은 1426만여 명의 2위 ‘국제시장’(2014)과 1132만여 명의 11위 ‘해운대’(2009)를 연출하고 제작했다. 현재까지 그와 동률인 감독 겸 제작자는 케이퍼필름의 최동훈이다. 그는 ‘도둑들’과 ‘암살’(연출 겸 제작)로 나란히 1000만 관객을 넘어섰다.
현재로선 제작자로서의 성적만 따지면 윤 감독이 최 감독보다 많이 앞선다. 연출 면에선 ‘범죄의 재구성’으로 박수갈채를 받은 최 감독과 ‘국제시장’으로 ‘국뽕’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던 윤 감독은 상대평가가 어렵다. 참고로 자본주의는 숫자로 평가하길 좋아한다.
윤 감독은 신예 시나리오 작가 시절 ‘두사부일체’(2001)의 시나리오가 제작사에 채택된 걸 계기로 아예 메가폰을 잡으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영화의 흥행성공의 외형은 번번이 성공의 문턱에서 미끄러지던 정준호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렸다는 점과 더불어 ‘친구’로 촉발된 조폭 영화의 붐을 조폭 코미디로 이었다는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그런데 이 초보감독의 상업적 센스는 이미 완성형이었다. ‘두사부일체’ 안에는 영화의 흥행성공요소인 액션 코미디 로맨스 최루탄 등이 골고루 섞여있었으며 교육계 비리와 여학생의 유흥업소 취업이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발과 메시지까지 담겨있었다.
탄력을 받은 윤 감독은 아예 두사부필름이란 자신의 제작사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제작에 뛰어들었다. 창립작 ‘색즉시공’(2002)은 ‘두사부일체’의 액션을 빼고 대신 성적인 코드를 강력한 무기로 앞세움으로써 또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두 번째 작품 ‘낭만자객’으로 참담한 실패를 봐야했다. 그의 지나친 화장실유머가 문제였던 것. 그래서 이후 그는 15편의 영화에서 연출을 자제하고 제작에 주력했다. 연출은 전술한 1000만 관객의 두 작품 외에 ‘1번가의 기적’이 유일하다.
어쨌든 ‘공조’는 지난해 윤 ‘제작자’에게 775만여 명의 훌륭한 성적표를 쥐어준 ‘히말라야’의 ‘효도’와 똑같은 보상은 보장한 듯하다. 이제 윤 감독은 한때 ‘충무로의 흥행사’라 불렸던 강우석 감독을 능가하는 상업적 수완과 센스가 두드러져 보인다.
누구나 알 수 있듯 연출자로서의 그의 지론은 지나쳐도 과하지 않다는 흥행의 철칙에 있다. 스토리텔링이란 드라마의 틀의 탄탄한 구성은 기본이다. 하나의 기획이나 소재를 잡으면 기승전결이 설득력과 타당성을 갖추고 매끄럽게 전개되는 게 원칙이다.
그 후 여기에 장르에 걸맞은 액션 코미디 휴머니즘 메시지 교훈 등을 차곡차곡 쌓는 것 역시 기본 인테리어다. 특히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웃음과 눈물의 공존이다. 어떤 영화든 반드시 한 편 안에서 동시에 웃기고 울려야 한다. 그는 유치함마저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이미 KBS2 ‘개그콘서트’에서 하도 써먹어 낡은 장롱서랍 깊은 곳에나 처박혔을 “내 아를 낳아둬”란 대사를 감히 ‘해운대’에서 설경구에게 시킬 정도로 폐품의 재활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지닌 그다.
그에게선 조지 루카스나 제임스 캐머런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 마이클 베이나 더 나아가 뤽 베송에 근접해가는 냄새는 난다. 그 입장에선 ‘트랜스포머’의 ‘베이’보다는 ‘그랑 블루’의 베송이 더 끌리긴 할 것이다.
베송은 ‘매드 맥스’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저예산 영화 ‘마지막 전쟁’으로 데뷔해 영화계에 충격을 줬다. 대사 한 마디 없이 88분간 진행되는 이 작품은 모든 것이 파괴된 암울한 미래사회가 원시사회와 다름없이 변했음을 보여줬다. 베송이 오랜만에 연출에 복귀한 최민식 주연의 영화 ‘루시’와 연결된다. 뇌의 능력을 100% 사용할 수 있는 초인이 된 주인공 루시는 최초의 인류 여성이라며 명명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종 화석이기도 하다.
이후 베송은 ‘그랑 블루’와 ‘아틀란티스: 바다의 오페라’로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중간계’에서 절묘한 양다리 걸치기를 하더니 결국 ‘레옹’과 ‘제5원소’로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시스템 안으로 들어온 뒤 본격적으로 제작에 나서 100편에 가까운 영화를 제작하거나 손을 댔다. ‘택시’ ‘13구역’ ‘트랜스포터’ 등의 본격 상업영화가 모두 그의 손에서 제작된 시리즈물이다.
‘국제시장’이 노스탤지어를 소재 주제 상업성 등에 모두 공통 적용했다는 점에선 자신의 작품에 대한 구 소련 당국의 감시 속에서 외국으로 떠돌아야 했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스탤지어’와 동일선상의 정서로 해석할 수 있지만 억압과 착취의 암울한 ‘독재시장'을 단지 부모에 대한 찬사와 그리움만으로 희석하거나 윤색할 수 없다는 점 하나만큼은 윤 감독의 영원한 숙제다.
그런 면에서 자신은 연출에 관여하지 않고 제작에만 몰두한 ‘공조’는 참으로 영악한 판단이었다. 서울에 잠입한 ‘공통의 적’을 잡기 위한 북한 형사와 남한 형사의 공조수사란 시스템은 단지 외교적인 형식일 뿐 북측과 남측의 의도와 목적은 제각각이란 설정은 남북의 대치상황과 엇비슷하다. 그 안엔 ‘연평해전’ ‘인천상륙작전’ ‘그물’ ‘광해, 왕이 된 남자’ ‘변호인’ 등을 망라하는 국지적 시퀀스가 절묘하게 녹아들어있는 듯하면서도 결론은 그냥 천편일률적인 화합과 권선징악으로 끝난다.
그건 윤 감독이 추구하는 사업성과 딱 들어맞는다. ‘잘생김’ ‘멋짐’으로 대표되는 현빈의 슈퍼히어로로서의 활약과 ‘웃기는’ 유해진 표 코미디를 전진배치하고 윤제균 특유의 가족애를 후방에 든든하게 포진시킴으로써 보편적 정서를 파고들어 안정된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NEW 쇼박스 롯데 등과 함께 국내 4대 메이저배급사를 이뤄 항상 선두자리를 다퉈온 CJ엔터테인먼트와 오랜 파트너쉽을 이뤄온 공조시스템 역시 윤 감독에겐 큰 힘일 것이다. 이제 그는 제작자로선 안정권이다. 그러나 감독으로선 아직도 숙제가 산적해있다. 만약 그에게 ‘작가’로서의 꿈이 유효하다면.
이준익 감독은 첫 작품 ‘키드캅’(1993)의 참패 후 10년간 제작과 수입에만 전념하다 ‘황산벌’로 연출 복귀를 알리곤 2년 뒤 ‘왕의 남자’로 비로소 ‘작가’가 됐다. 최근작 ‘사도’나 ‘동주’를 보면 ‘키드캅’이나 ‘평양성’을 연출한 감독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미 오래 전부터 제작시스템을 후배에게 모두 넘기고 메가폰만 만지작거려온 이제 그는 슬금슬금 거장 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중이다.
‘그랑 블루’의 연출자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돈독이 바짝 올랐던 베송은 ‘루시’에서 그나마 예전의 철학을 되찾은 모습을 보였다. 아직 ‘레옹’과 ‘제5원소’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흔적은 있지만 숱한 상업영화를 제작한 프로듀서로서 요즘 세대에 더 널리 알려진 그의 ‘작가본능’은 충분히 빛을 발한다. 살아있다.
큰 토끼 한 마리만큼은 확실하게 잡은 윤제균의 남은 숙제다./osensta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