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직하고 강인한 남성적인 캐릭터를 맡아 온 조진웅은 ‘해빙’에서는 그와는 정반대의 나약한 인물의 모습을 그린다. 그는 예민하고 날카롭고 어딘지 불안한 내과 의사 승훈 역을 맡아 무려 18kg을 감량하며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영화 ‘해빙’(감독 이수연)은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답게 시종일관 어둡고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5세 관람가이지만 꽤 잔인한 몇몇 장면들은 마치 공포영화를 연상케 하고 영화 중간 중간 나오는 귀가 찢어질듯 한 배경음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 후반부 몰아치는 반전 역시 어찌 보면 뻔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 모든 단점들을 상쇄시킬 만큼 강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것은 단연 조진웅의 연기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진웅의 심리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조진웅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급격히 변하는 캐릭터의 감정을 섬세하고 완벽하게 표현하며 인물과 스토리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조진웅은 영화 초반 서울 강남에서 개업했다 망하고 경기도 변두리 도시에 있는 선배 병원에 계약직 의사로 오게 된 승훈의 무기력함부터 주인집 부자의 미스터리한 비밀을 알게 된 후 점점 조여 오는 공포감과 히스테릭함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조진웅은 영화 대부분의 씬에 등장할 뿐만 아니라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장면들이 많아 자칫 지루함을 자아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시각각 다양하게 변주하는 그의 연기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조진웅을 비롯해 김대명, 신구, 이청아까지 연기파 배우들이 한데 뭉쳐 만들어낸 영화 ‘해빙’이 웰메이드 스릴러 영화를 기다렸던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해줄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mk3244@osen.co.kr
[사진] '해빙' 스틸 이미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