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회생’ 최형우, 2008년 베이징의 이승엽 될까?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3.05 05: 59

최형우(34·KIA)가 마지막 연습경기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를 향한 비난 여론은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과연 최형우는 2008 베이징올림픽의 이승엽이 될 수 있을까?
최형우는 언제나 리그 최고 타자 중 한 명으로 꼽혔지만 이상하리만치 태극마크와 인연이 없었다.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이 ‘생애 첫 태극마크’.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소집 초반부터 “김태균과 최형우, 이대호로 클린업트리오를 꾸릴 것이다”라며 전폭적인 지지를 드러냈다.
그는 예상 외로 부진했다. 대표팀 공격을 이끌 것으로 여겨졌던 최형우였지만 외려 야수들 가운데 가장 컨디션이 안 좋았다.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에서 치른 두 경기에서 무안타로 침묵했을 때만 해도 난조가 오래 갈 거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고척 스카이돔서 치른 쿠바와 두 차례, 호주와 한 차례 평가전에서도 침묵은 이어졌다.

지난 2일 상무와 연습경기까지 6경기, 19타석 17타수 무안타. 최형우에게 기대하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김인식 감독은 “타구 질 자체는 괜찮다. 잘 맞은 타구가 번번이 아웃으로 이어지다보니 본인이 조급해 하는 것 같다”며 침착함을 당부했다. 물론 매 경기 무안타 소식만 전해지는 와중에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많은 팬들이 “최형우를 라인업에서 빼야한다”라며 비난과 조롱의 목소리를 냈다. 대표팀에서의 부진은 최형우가 지난 수년간 KBO리그에서 쌓아온 기록들에 대한 폄하로 이어졌다. ‘영양가 없다’는 평가부터 ‘결정적인 한 방이 없다’는 비난까지. 최형우에 대한 융단폭격이 이어졌다
▲거품 논란, 최형우는 증명을 끝냈다
그러나 최형우는 자신의 ‘한 방’을 증명해온 타자다. 최형우는 최근 세 시즌, 7회 이후 2점차 이내의 ‘CL&Late’ 상황에서 231차례 타석에 들어섰다. 이때 최형우는 9홈런, 타율 3할3푼3리를 기록하며 해결사 역할을 다했다.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던 경기 막판에 ‘클러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최형우가 ‘강한 투수에 약했고 약한 투수를 상대로 강했다’라며 그를 ‘스탯관리’형 타자로 폄하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형우는 지난 세 시즌,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투수들을 상대로 타율 3할1푼9리, 8홈런, 49타점을 기록했다. 3점대 평균자책점 투수들을 상대로 최형우보다 더 많은 타점을 올린 선수는 단 한 명, 김태균(63타점)뿐이다.
리그를 휩쓴 ‘에이스’들과 승부에서도 쉽사리 밀리지 않았다. 최형우는 2014년부터 3년간 ‘리그 최고 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상대로 타율 3할5푼5리(31타수 11안타), 2홈런을 때려냈다. 장원준에게도 지난 두 시즌 타율 3할8푼1리(21타수 8안타), 7타점으로 강했다. 김광현에게는 타율 4할4푼8리, 1홈런, 5타점으로 압도하는 모습. 물론 에릭 해커(타율 1할8푼8리)나 메릴 켈리(타율 1할6푼7리)처럼 유독 약했던 투수들도 있지만 ‘에이스급 투수’들에게 번번이 고개를 떨궜던 것은 아니다.
▲이승엽과 최형우. 4번타자의 무게감
이쯤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2008 베이징올림픽의 이승엽(삼성)이다. 이승엽은 예선 7경기에서 타율 1할3푼6리(22타수 3안타)로 침묵했다. 득점 기회마다 번번이 맥을 끊었다. 당시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정말 중요한 순간에 한 번만 해주면 된다”라며 신뢰를 보냈지만 팬들의 비난 여론은 들끓었다.
결국 이승엽은 김경문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일본과 4강전서 2-2로 맞선 8회 1사 1루, 일본 대표팀의 좌완 특급 이와세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기록했다. 내내 침묵하던 이승엽의 반전이었다. 그는 경기 후 “4번타자가 그동안 너무 부진해서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가 짊어졌던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김인식 감독 역시 최형우에게 매 타석 출루를 바라지 않는다. 최형우는 결정적 순간에 때려내는 한 방이면 자신의 역할을 십분 수행하는 것이다.
기나긴 무안타 행진을 4일 경찰청과 연습경기에서 깼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본선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기회였던 셈. 만일 이날 경기서도 안타를 때려내지 못했다면 김인식 감독이 우려한 최형우의 ‘심리적 부담’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김 감독도 "이제 부담을 덜고 더 좋아지길 바란다"고 최형우에게 당부를 전했다.
물론 최형우가 마지막 연습경기에서 2안타를 기록했다는 것만으로 “최형우가 살아났다”라고 평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최형우가 연습경기 및 평가전서 부진했다는 이유로 “최형우는 거품이다”라고 예단해서도 안 된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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