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배우들이 경쟁할 수 있는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는 게 너무 슬퍼요. 저와 같은 배우들이 무언가를 펼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으니까요.”
‘여배우’라는 단어, 참 애매한 말이다. 왜 ‘남배우’라고는 하지 않으면서, 왜 여배우라는 단어는 사용을 하는 것이냐 되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공공연히 여배우라는 단어가 사용된다는 건, 그만큼 여자 배우라는 위치나 상징이 남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여자로서, 스타로서,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복합적인 위치이니 말이다.
고아성은 그 여배우라는 단어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흔히들 ‘가장 예쁠 나이’라고 말하는 20대의 한가운데를 보내고 있고,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시작한 베테랑 배우이며,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대한 방향성을 고민하는 청춘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여배우로서의 지금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고아성은 지난 4일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에서 주인공 은호원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는 “영화는 촬영이 끝나도 후반작업과 무대인사 등으로 길게 가지만, 드라마는 종방연을 하면 진짜 끝이니 ‘끝이 참 간결하구나’란 생각이 든다”며 종영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번 드라마는 사전제작드라마가 아닌 미니시리즈라 스케줄이 힘들었지만, 좋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만나 행복했다. 드라마가 끝나고 바로 해외로 화보 촬영을 갔었는데, 스태프들이 계속 생각나더라. 그 정도로 정말 좋은 현장이었다.”
고아성이 맡은 은호원은 비록 계약직이지만 부당한 행태에 쓴소리 할 줄 아는 당돌한 캐릭터다. 그 스스로도 은호원을 “끈질기고 절실한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은호원이 겪는 온갖 ‘을(乙)의 설움’에 대해 고아성은 “꼭 겪어보지 않더라도, 구체적인 사례를 찾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만연한 일들”이라고 말했다.
“은호원은 취준생에 국한된 인물이 아니라, 누구나 마음속의 을을 깨우는 그런 캐릭터였다. 저 또한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많이 경험했고, 잘하고 싶은데 실수투성이인 나를 발견할 때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취준생, 회사에 갓 취직한 분들이 아니더라도 많으 분들이 드라마에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4살에 CF로 데뷔해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는 고아성이 취준생의 ‘불안함’에 공감을 할 수 있었을지. 고아성은 이를 듣고는 “배우는 모든 순간 공감을 해야 연기가 나오기 때문에 공감은 매순간 있었다”고 말하면서도 관객과 시청자들에 선택받는 직업인 배우로서 불안함은 숙명이라고 말했다.
“배우로서 안정적인 포지션으로 전환되는 시점은 없는 것 같다.(웃음) 한창 오디션을 많이 볼 때에는 하도 떨어지고, 오디션 보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절실함이 덜해지기도 했다. 그 때보다는 나아졌지만, 배우를 하는 한 영원히 이렇게 불안정할 것이란 생각을 5년 전부터 해왔다.”
그럼에도 고아성이 연기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그는 배우란 직업에 매력을 느낀다고 답했다. 자신이 배우인 게 너무나 다행이라는 말도 했다. 일과 일상이 분리되기 힘든 게 배우이지만, 고아성은 그게 바로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이라며 “내 삶이 직업에 귀속되는 게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배우는 제 인생을 함께 할 직업이고, 제 생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을 연구하는 직업이다 보니 한시도 직업을 놓친 적이 없던 것 같다. 내 삶이 직업에 귀속되는 게 행복하고, 내 삶을 다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직업을 만나서 기쁘다. 물론 계속 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게 힘들다면 힘들다. 하지만 어떤 분께서 배우를 가리켜 ‘시대를 따라가는 직업’이란 말을 해주셨다. 나 또한 오래도록 이 사회에 섞이고 싶고, 도태되고 싶지 않다.”
아역부터 성인 연기까지 연기를 이어온 고아성에게 어떤 아역 배우가 가장 눈에 띄느냐 물으니 “영화 ‘오빠생각’에 함께 출연한 아역들의 작품은 찾아보게 된다”고 말하면서도, “사실 아역 배우들보다는 내 또래 여자 배우들의 작품을 더 많이 챙겨본다”고 고백했다.
“20대 또래 여자배우들 사이에서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게 슬프다. 그만큼 저와 비슷한 또래 배우들이 무언가를 펼칠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다. 그래서 또래 배우들의 작품을 더 챙겨보는 것 같다. 작품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응원한다. 서로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20대 여배우들이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며 아쉬워한 고아성. 그가 ‘자체발광 오피스’를 선택한 이유도 희로애락을 모두 펼칠 수 있는 은호원이란 캐릭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나 작품을 했으면서, 고아성은 정작 아직도 목이 마른 듯 보인다.
“제 인생은 30대에 판가름이 날 것 같다. 제 성향이나 자아 같은 걸 고려했을 때 그 때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제 30대를 기대해도 되냐고? 기대해달라고 했다가 별 게 없으면 어쩌나. 아주 조금만 기대를 해달라.(웃음)”(Oh!커피 한 잔②로 이어집니다.)/ yjh0304@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