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잘생김’이지만, 그 외모가 한층 돋보일 수 있는 비결은 카리스마 철철 넘치는 등장 신(scene)이 아닐까 싶다. 심지어 그가 수양대군 역을 맡은 영화 ‘관상’의 등장을 놓고 35초 분량의 ‘으르렁 영상’이 만들어진 것을 보면 말이다. 4년여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높은 조회수를 자랑한다.
이정재의 폭주하는 등장은 ‘하녀’(감독 임상수, 2010)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다.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대기업 회장 역을 맡은 그는 잔디밭이 깔린 으리으리한 단독 주택의 돌계단을 걸어올라오며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이 사내의 다가옴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린 명장면 중 명장면이다.
이정재 하면 영화 ‘도둑들’(감독 최동훈, 2012)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필모그래피이다. 그 많은 출연 배우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연기적 재능과 노력을 가장 부지런히 운영할 줄 아는 능력자다운 정수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정재의 굵직한 목소리와 어깨의 힘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었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신세계’(감독 박훈정)의 중심에도 이정재가 떡하니 서 있다. 경찰로서 조직에 잠입하는 언더커버의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재미를 능수능란하게 조련했다. 자성 역을 맡은 그는 그룹의 실세인 정청(황정민 분)을 공항으로 마중 나가면서 피보다 진한 형제애를 연기했다. 무엇보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정의를 발산해야할 형사의 일촉즉발의 배신의 향기가 감돌아 이목을 집중케 했다.
자성 캐릭터를 맛깔나게 소화한 이정재는 무표정 속에서도 잠깐씩 스쳐 지나가는 미세한 표정 변화로 폭발력을 극대화하며, 기존의 훈훈한 남자의 이미지를 완전히 떨쳐버렸다. ‘신세계’를 통해 이정재의 팬이 된 남성 팬들이 많은 정도로 스타일리시한 면모를 다각도로 보여줬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정재의 등장신하면 ‘관상’(감독 한재림, 2013)이다. 왕의 자리가 위태로웠던 조선시대에 사람의 외모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관상가가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이정재는 수양대군 역을 맡아 역대급 매력을 발산했다.
흥행에 성공한 ‘관상’은 관상학을 중심축을 세워놓고 한 남자의 기구한 운명, 부성애, 인간 내면의 욕망까지 거대한 스토리를 담아내 913만 5802명(영진위 제공)의 관객수를 동원했다.
이정재하면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모든 배우들이 작품 제안을 받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 캐릭터 분석과정을 거치기 마련인데, 그는 타 배우들보다 좀 더 섬세하고 집중력 있게 들어간다는 전언이다. 본인 역시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고민을 많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와 함께 작품을 만든 배우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정재는 자신의 분량이 적고 많음을 떠나서 한 장면이라도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후배들의 분량까지 세심하게 배려한다. ‘암살’(감독 최동훈, 2015)에서 암살단을 불러 모으는 냉철한 임시정부대원 염석진 역을 맡았던 그는 10개월 동안 오롯이 염석진에 몰입했다고. 독립운동가에서 변절자로 돌아와 배신하는 캐릭터를 더 악랄하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 스스로 그 인물을 믿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탐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인상 깊은 장면을 만들어온 그가 이번에는 정통 사극 ‘대립군’(감독 정윤철)으로 31일 스크린에 컴백했다. 이번에는 먹고 살기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서주는 대립군의 수장 토우 역을 맡았는데 그가 5개월간의 촬영 동안 얼마나 연구하고 노력했는지 역시나 그 존재감이 대단하다. 그가 이번에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등장하는지 기대해 봐도 좋을 듯싶다./ purplish@osen.co.kr
[사진] 각 영화 스틸이미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