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KBO 리그 프리에이전트(FA) 시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이택근 김주찬 등으로 이어지며 심상치 않은 폭등 조짐을 보인 FA 시장은 2014년 강민호(롯데)가 4년 총액 75억 원이라는 역대 신기록을 쓰는 등 대폭발했다. FA 시장가 폭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징적인 해로 기억된다.
그로부터 어느덧 3년 반이 지나고 있다. 당시 4년 계약을 맺은 12명의 선수들은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다. 이 중 등록일수를 꼬박꼬박 채운 선수들은 올 시즌이 끝난 뒤 다시 FA 자격을 얻는다. 그렇다면 당시 FA 선수들은 당시 투자만큼의 효용을 구단에 제공했을까.
강민호-정근우, 비싼 만큼 공헌했다
당시 총액 기준 가장 비싼 선수들이었던 강민호와 정근우(한화)는 비쌌던 만큼 팀에 공헌했다는 결론에 가까워지고 있다. 강민호는 당시 4년 75억 원, 정근우는 4년 70억 원에 계약하며 ‘거품론’에 불을 지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시 FA 선수들의 기록을 놓고 봤을 때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효율이 그렇게 떨어진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뒤이어 이들의 몸값을 뛰어넘는 선수들이 속출해 지금의 체감도 사뭇 달라졌다.
강민호는 2014년 이후 7일까지 총 388경기에 나가 타율 2할9푼2리, OPS(출루율+장타율) 0.932, 78홈런, 222타점을 기록했다. 포수라는 점을 고려할 때 공격적인 성적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두 시즌 이상을 뛴 선수로 한정했을 때, 이 기간 롯데에서 강민호보다 더 나은 OPS를 기록한 선수는 없었다. 올해가 끝나면 FA 자격을 얻을 예정으로, 여전히 뜨거운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근우도 값어치가 높았다. 계약 당시 나이가 이미 33살이라 노쇠화 우려도 있었지만 하락 곡선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장을 역임하기도 한 정근우는 이 기간 중 총 442경기에 나갔는데 이는 한화 야수 중 최다 출전이었다. 여기에 타율 3할6리, OPS 0.833, 40홈런, 221타점, 78도루를 기록하며 분전했다. 2루 수비의 하락세는 크지 않았다. 521개의 안타는 팀 동료 김태균(530안타)에 이어 2위다.
이들은 3년 반 합계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에서도 리그 상위권의 선수들이었다. 포지션 내 누적 성적을 봐도 이들보다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은 많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양의지(두산·포수), 서건창(넥센·2루수) 정도가 이들의 경쟁 상대였다. 물론 큰 돈을 들인 만큼 효율성에 대한 문제는 따로 논할 수도 있다. 다만 ‘잘못된 투자’라는 평가는 거의 없다. 나름대로 좋은 4년을 보냈음을 실감할 수 있다.
‘부상 고전’ 이용규-장원삼, 뭔가 아쉬운 성적
이용규는 4년 67억 원에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장원삼은 당시 투수 최고액이었던 4년 60억 원에 삼성 잔류를 선택했다. 역시 적지 않은 금액이 투자된 선수들이었다. 물론 ‘최악의 먹튀’까지는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아쉬운 성적을 냈다는 평가다. 이용규는 부상으로 결장한 경기가 너무 많았고, 장원삼은 시간이 갈수록 성적의 하락폭이 가팔랐다. 올 시즌도 두 선수는 부상과 싸우고 있다.
이용규는 출전한 경기에서는 좋은 활약을 했다. 2014년 이후 타율이 3할2푼9리에 이르고, 출루율은 4할1푼8리에 이른다. 여기에 66개의 도루를 추가했다. 공·수 전반에서 이용규에게 기대한 수치는 어느 정도 나온 셈이다. 그러나 352경기 출전에 머문 것이 흠이었다. 매년 부상이 있었고 2015년 124경기가 최다 출전이었다. 아무리 잘하는 선수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법. 부상이 아쉬운 투자였다.
장원삼도 성적의 하락세가 눈에 들어온다. 역시 잔부상이 많았다. 첫 시즌이었던 2014년 11승을 거뒀으나 129⅓이닝 소화에 그쳤다. 2015년은 10승을 올리기는 했으나 평균자책점이 5.80까지 치솟았다. 그 후로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2016년 26경기에서 78⅓이닝을 던지는 데 그치며 5승8패2홀드 평균자책점 7.01의 성적을 냈다. 올해도 11경기 출전에 머물고 있다. 올해 남은 기간이 있지만 몸값을 다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4년 50억 원을 받은 이종욱(NC)은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한 그래프였다. 422경기에 나서 나성범(460경기)과 더불어 NC 외야를 지킨 이종욱의 타율은 2할8푼9리, OPS는 0.753이었다. 타고투저 흐름을 고려할 때 약간은 아쉬운 타격 성적임은 분명하다. 여기에 장점이었던 도루도 49개에 그쳤다. 그러나 베테랑의 경험을 신생팀 NC에 이식했다는 점 등 외부적인 효과도 많았다. 구단에서는 비교적 만족스러웠던 영입으로 자평하고 있다.
박정진이 최고? 희비 엇갈린 ‘알짜 FA’
당시 대어들보다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계약, ‘알짜 FA’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받은 선수들의 희비는 다소 엇갈렸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몸값의 차이를 뒤집을 만한 ‘대박’은 없었다는 평가다. 많은 연봉을 받은 특급 대어들보다는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팀 공헌도였다. 그러나 연봉도 적었기에 효율성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4년 35억 원에 계약한 최준석은 그래도 꾸준히 롯데 타선을 지켰다. 435경기에 나가 타율 2할9푼, OPS 0.902를 기록했다. 이 기간 중 터뜨린 홈런 78개는 팀 내 최다였다. 몇몇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대호의 이적 이후 헐거워졌던 중심타선에서 나름대로 분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적어도 팀이 기대했던 수준의 공격력은 보여줬고 롯데에서는 그나마 해결사 몫을 하는 등 계약 내용에 비해 효율성은 좋았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4년 30억 원에 NC와 계약한 손시헌도 내야의 핵심인 유격수 자리를 지켰다. 384경기에 나가 타율 2할8푼1리, OPS 0.764를 기록했다. 서서히 젊은 선수들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는 NC지만 손시헌의 가치는 여전히 크다는 게 중론이다. 수비력은 여전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110경기에서 타율 3할5리, 출루율 3할9푼4리를 기록하며 공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선보였다.
삼성과 4년 28억 원에 계약한 박한이는 꾸준한 안타생산능력을 선보였다. 2014년 156안타, 2015년 110안타, 2016년에는 105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부상이 많아 출전 경기가 적었던 것이 아쉬웠다. 건강하다면 더 많은 안타를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결국 나이를 속이지 못한 셈이 됐다. 올해는 16년 동안 이어온 세 자릿수 안타 행진이 좌절될 위기다.
반면 KIA와 4년 24억 원 계약을 맺어 세간을 놀라게 했던 이대형은 신생팀 kt의 특별 지명 당시 팀을 옮겼다. KIA와는 2014년 딱 1년을 같이 했다. 126경기에서 타율 3할2푼3리와 22도루를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지만 20인 보호선수명단에서 제외돼 당시에는 논란이 있었다. 남은 3년치 연봉은 kt가 지급했지만, KIA로서는 계약금 투자 비중을 고려할 때 이득을 봤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화와 4년 20억 원 계약을 한 이대수 또한 트레이드로 이적해 한화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SK 이적 후에도 줄어든 출전 시간에 고전이 이어지고 있다. 한상훈은 FA 기간 중 보류선수명단에서 제외되는 보기 드문 사례를 남긴 채 프로무대를 떠났다. LG와 3년 계약을 맺었던 이병규는 3년간 단 117경기에만 뛴 채 세대교체 흐름 속에서 은퇴해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고, 강영식(4년 17억 원)도 저비용 고효율의 이름표를 달지는 못했다.
반면 2년 8억 원에 계약했던 박정진(한화)은 2년간 무려 136경기에 나가 자신의 몫을 했다. 한화로서는 정근우 이용규와 같은 대형계약보다 오히려 가격대비 성능비는 더 좋았던 셈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