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요즘, 배우 엄기준이 처음으로 예능에 출연해 ‘인간 엄기준’의 모습을 보여줬다. TV 드라마나 영화, 무대가 아닌 예능의 틀에서 그를 본다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내려놓고 한층 여유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어 뜻밖의 재미를 안겼다.
그가 첫 출연한 MBC 예능 ‘오지의 마법사’는 어느 날 갑자기 신비의 나라에 떨어진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바탕으로 한 여행 판타지 프로그램이다. 엄기준 김수로 니엘, 김태원 윤정수 최민용이 각각 팀을 이뤄 3일 안에 네팔 포카라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첫 날부터 이들은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마실 물만 지닌 채 극한의 여행을 시작했다. 김수로의 팀은 마르파에서, 김태원의 팀은 타캄에서 첫 번째 밤을 묵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돈을 벌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엄기준은 김수로, 니엘과 전통의 네팔 사원에서 하루를 묵은 뒤 그들로부터 아침식사를 제공받았다. 이들은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답례를 하기 위해 마당과 창문 청소를 했고, 떠나기 전 주지스님으로부터 결혼식장에서 일손을 도우면 돈을 벌 수 있고 그것을 통해 목적지에 갈 수 있다는 ‘꿀팁’을 받았다. 반나절을 일해 1000루피를 빈 이들은 둘째 날의 목적지인 베니로 향했다.
김수로의 진두지휘 아래 예능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엄기준의 좌충우돌이 리얼하게 담겼다. 식장 아르바이트에서 양고기 다지기 업무를 부여받은 그는 고기를 다지며 “이게 어느 부위일까? 피가 막 튄다”고 말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제가 그동안 사람 죽이는 역할을 많이 해서 피 분장을 자주 했었는데 앞으로 사람 죽이는 연기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다분히 일상적인 모습을 통해 웃음을 유발한 것.
‘오지의 마법사’는 화학조미료를 잔뜩 친 것처럼 자극적이지도 않고, 유난스럽게 미리 정해진 행동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로드 버라이어티로서 특유의 소박한 정서와 감정을 공유했다. 또 한 번쯤 무작정 떠나보고 싶다는 결심을 서게 만들기도 했다.
엄기준은 스스로의 힐링을 위해 동료들과 네팔 여행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단순히 일상을 벗어나는 행위라기보다 배우로 활동하며 잊었던 일상을 선후배들과 함께 다시 회복하려는 것이다. 그는 시골 마을의 훈훈한 정서에서 느끼는 감정과 낡은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것에 나름대로 적응하고 일찍 일어나는 모습까지 가감 없이 보여줬다. 걷고 먹고 자고 웃고 떠드는 인간 엄기준의 모습이 반가웠다./ purplish@osen.co.kr
[사진] '오지의 마법사'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