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있던 이동국(38, 전북 현대)의 심장이 다시 뛴다.
전북은 지난 28일 포항 스틸야드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17라운드 원정 경기서 전반 이동국의 2골과 후반 에두의 쐐기골에 힘입어 포항 스틸러스를 3-1로 완파했다. 전북은 이날 승리로 승점 35를 기록하며 선두를 질주했다. 2위 울산(승점 29)과 격차를 승점 6으로 벌리며 독주체제의 신호탄을 쐈다.
▲ 이동국, K리그 통산 200골에 -5골
전북 승리의 일등공신은 베테랑 공격수 이동국이었다. 지난달 6일 대구전 이후 54일 만에 선발 출격한 '라이언킹'이 포효했다. 이동국은 이날 리그 2, 3호 골을 연달아 터트리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동국은 전반 5분 만에 친정팀 포항에 비수를 꽂았다. 박스 안에서 부드러운 페이크로 수비수의 시선을 빼앗은 뒤 전매특허인 오른발 강슛으로 포항 골네트를 갈랐다. 23분엔 황지수와 손준호의 그물망을 뚫고 박스 안으로 진입해 페널티킥을 얻어낸 뒤 직접 차 넣어 2-0 리드를 안겼다.
그간의 아쉬움을 깨끗이 털어내는 활약상이다. 지난 2009년 22골 이후 지난해까지 8년 연속 K리그 두 자릿수 골을 기록했던 이동국은 올 시즌 부상과 주전 경쟁으로 곤욕을 치르며 리그 10경기 1골에 그쳤다.
몸 상태가 나빴던 건 아니다. 부상 복귀 이후 꾸준히 컨디션을 끌어올렸지만 득점 감각이 좋은 에두와 김신욱에게 밀려 교체로 나서는 일이 잦아졌다. 최전방 공격수 3명이 비슷한 스타일의 타깃형 스트라이커라는 점도 이동국의 출전을 가로막았다.
이동국은 포항전 승리 뒤 힘들었던 심경을 고백했다. "전북에 온 뒤로 올해 심적으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출전 시간이 보장 돼 있다가 올해 들어 10분, 5분을 뛰었다. 경기장서 몸만 풀다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최강희 전북 감독도 미안함이 앞섰다. "동국이가 훈련 때 워낙 좋은 몸놀림을 보여 믿고 기용했는데 골을 넣어줬다"는 그는 "경기에 못 나가도 팀을 위해 헌신한 동국이에게 고마움보다는 미안함이 크다"고 했다.
이동국을 일으켜세운 건 프로 의식이었다. "심적으로 흐트러질 수 있었는데 나에게 주어질 시간이 있기 때문에 '올해까지 버텨야 된다'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 많은 시간을 뛰지는 못했지만 지고 있을 때 감독님이 찾을 수 있는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이동국은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K리그 통산 200골(현재 450경기 195골 66도움)을 향해 축구화 끈을 조여매고 있다. 그는 "최근까지 '200골을 못 넣고 끝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포항전 2골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욕심이 생겼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 이동국과 아이들 건재한 전북, 김보경 없어도 강팀
최근 J리그 유턴이 결정된 김보경이 없어도 이동국과 아이들이 건재한 전북은 강했다. 이재성과 이승기 등 김보경 자리에서 활약할 자원이 있지만 이들은 당분간 부상자 에델-고무열과 군복무 중인 한교원이 이탈한 측면에서 뛰어야 한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포항전서 이승기와 이재성을 좌우 측면에 두고, 장윤호와 정혁에게 김보경의 역할을 맡겼다. 둘 모두 활동량이라는 강점을 앞세워 중원을 장악하는, 김보경과는 다른 스타일. 김보경 없는 첫 판에 시선이 쏠렸던 까닭이다.
최 감독은 경기 전 "보경이와 윤호는 스타일이 다르다. 윤호의 장점은 기동력을 바탕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보경이는 미드필드서 안정적 키핑과 연결을 해준다"면서 "윤호는 기회를 많이 받으면 좋은 선수로 성장이 가능하다"고 믿음을 보냈다.
장윤호는 수장의 신뢰에 보답이라도 하듯 쉴 새 없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전북이 전반 경기를 장악할 수 있었던 숨은 원동력은 장윤호와 정혁을 위시한 강력한 전방 압박이었다. 이재성과 이승기도 수시로 중앙으로 옮겨 김보경의 역할을 대신했다. 뛰어난 패스와 기술을 앞세워 김보경의 공백을 무색케 했다.
전북도 위기가 없던 건 아니다. 후반 들어 포항의 공세에 적잖이 당황했다. 수비 실수로 자초한 위기서 손준호에게 만회골을 내주며 쫓겼다. 이후 양동현과 손준호에게 두 번이나 골대 강타를 허용하는 등 아찔한 위기를 맞았다.
전북은 추가 실점을 막았고, 쐐기골을 넣으며 강팀임을 증명했다. 최 감독은 "체력적으로 힘든 경기였지만 선수들이 정신력과 운영 능력으로 이겨냈다"며 "실수에 의해 실점을 했지만 위기를 버티고 극복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다가오는 여름 선수단 운용에도 숨통이 트인다. 측면 자원인 로페즈는 부상에서 복귀해 선발로 뛸 체력을 거의 만들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며 K3리그 화성FC에서 뛰고 있는 한교원은 내 달 말 팀에 합류한다. 에델과 고무열까지 돌아오면 측면 자원만 2배수가 돼 최 감독의 계산대로 이승기와 이재성을 중앙에서 활용할 수 있다./dolyng@osen.co.kr
[사진] 프로축구연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