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우리 팀에서 200안타를 치는 선수가 나온다면 이명기일 것이다”
김용희 전 SK 감독과 코칭스태프의 생각은 일치했다. 이명기가 리그를 대표하는 안타머신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실제 이명기는 그런 가능성을 비교적 뚜렷하게 보여줬다. 발목 부상에서 돌아온 2014년 83경기에서 타율 3할6푼8리, 105안타를 기록했고 첫 풀타임 시즌이었던 2015년에는 164개의 안타를 쳤다. 정확한 컨택 능력, 그리고 발이 빨라 내야안타를 만들 수도 있다는 장점까지. 안타 생산에는 최적화된 선수였다.
그런 이명기는 2016년 시련을 겪었다. 99경기에서 타율이 2할7푼2리까지 떨어졌다. 78개의 안타에 그쳤다. 모두가 의아했던 부진이었다. “적어도 3할은 친다”는 생각이 강했기에 그랬다. 코칭스태프는 이명기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를 썼다. 2군에 가도 조금 나아진다 싶으면 바로 1군에 올렸다. 이명기도 노력을 많이 했다. 하지만 성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 여파는 결국 올해 트레이드로 이어진다. SK가 이명기를 포기한 것이다.
이명기는 지난해 사투를 벌였다. 밤새 방망이를 돌려보기도 했고, 무작정 많이 뛰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았던 성적은 트레이드 이후 확 달라졌다. 이명기는 20일까지 77경기에서 타율 3할5푼, 111개의 안타를 치며 복덩이로 거듭났다. 홈런도 벌써 개인 최다인 6개가 된다. 여기에 2루타도 많아지는 등 0.479의 장타율을 기록 중이다. 리드오프의 OPS(출루율+장타율)가 0.874라면 리그 최정상급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명기의 대답은 간단하다.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이명기의 설명이다. 이명기는 “원래 이런 타격이 나왔어야 했는데, 지난해 부진에 대한 인상이 너무 강한 것 같다”고 곰곰하게 떠올렸다. 타격폼도 바뀐 것이 없고, 스윙궤도도 달라진 게 없다. 종합하면, 이명기는 잠시 잃었던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며 제 자리로 돌아왔다고 봐야 한다. SK가 기대했던 200안타 잠재력은 KIA에서 다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명기는 “지난해에 비해 포인트가 조금 좋아지면서 비거리가 늘어난 면은 있다. 앞에서 맞으면 우중간으로, 좀 뒤에서 맞으면 좌중간으로 간다”고 했다. 이명기는 결국 심리적인 문제라고 했다. 이명기는 “지난해에는 안 되니까 공을 끝까지 보고 치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타이밍이 자꾸 늦었다. 여기에 내 약점이었던 몸쪽 공 대처가 안 되다보니 빗맞은 2루 땅볼이 많이 나왔던 것이다. 믿어주셨던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라면서 “지금은 다들 잘 치니까 내가 꼭 쳐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홀가분해진 마음, 그리고 홀가분해진 스윙을 보여주고 있는 이명기는 지난 5월 27일 광주 롯데전 이후 무려 40경기 연속 출루를 기록 중이다. 올 시즌만 놓고 보면 시즌 시작부터 6월 3일 대전 SK전까지 40경기 연속 출루를 했던 김태균(한화)과 공동 1위다. 21일 광주 롯데전에서 한 번 더 출루하면 올 시즌 최고 기록을 쓴다. 같이 나란히 달리던 박용택(LG)의 기록이 38경기에서 중단돼 당분간 이명기의 이름이 꼭대기에 있을 공산이 커졌다.
이명기는 6월 출루율이 4할5푼5리, 7월 출루율도 4할5푼8리다. 시즌 출루율도 3할9푼5리로 4할 진입을 앞두고 있는데 1번 타순에서 소화한 156타석만 놓고 보면 출루율이 4할1푼7리다. 이는 1번 타순 한정 손아섭(롯데·0.429)에 이어 리그 2위. 당장 올해 200안타는 힘들겠지만, 이 페이스라면 내년에는 한 번쯤 도전해 볼만 하다. 이명기가 원래 그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