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곪은 상처가 터졌을 뿐이다”
한 배구계 원로는 이번 ‘김연경 발언’에 대해 “대한배구협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라고 잘라 말하면서 “최근 5년간 배구협회장이 몇 번이나 바뀌었나. 그런데 모두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한 사람의 역량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배구계가 내 편, 네 편을 나누며 싸울 것이 아니라 정상화를 위해 합심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나 이번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 기대하는 이는 거의 없다. 곪을 대로 곪은 문제가 한 선수의 소신발언으로 수면 위에 올랐으나 실질적인 해결 능력은 미지수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표류하는 대한배구협회의 중재 능력만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셈이 됐다. 그러나 협회에 대한 배구계의 불신은 뿌리가 꽤 깊다. “능력 부족”이라는 질타가 주를 이룬다.
물론 협회가 꼭 대표팀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대표팀이 협회 로드맵의 정점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표팀의 선전이 종목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부실한 지원 문제는 이미 수차례 언급이 됐음에도 해결될 조짐이 없다. 협회장 교체기의 혼란을 생각해도 아마추어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핵심은 돈이다. 협회는 대표팀을 지원할 충분한 금전적인 여력이 없다는 게 중론이다. 협회 관계자들도 이와 같은 현실에 한탄한다. 한 관계자는 “왜 우리라고 대표팀 지원을 팍팍 하고 싶지 않겠나”고 되물었다. 사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원금이나 한국배구연맹(KOVO)이 지원하는 금액으로는 협회 운영도 벅찬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실질적 행보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게 더 문제다.
제대로 된 스폰서 2~3개를 확보하는 것조차 애를 먹으니 ‘회장’의 주머니만 바라보는 시기가 꽤 길어지고 있다. 원로들이 혀를 차는 부분도 이런 측면이 있다. 혹은 원로들조차 뜻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 비판도 존재한다. 서로의 편을 나눠 반목하고 대립한다는 것이다. 회장의 잦은 교체 속에 협회가 사실상 ‘식물 상태’로 전락했다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나올 정도다. 어제의 실세는 오늘의 반대파가, 그러다 내일의 실세가 되기도 한다.
말 그대로 현 시점에서는 탈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야구처럼 성인 대표팀은 프로가 주도해 운영하는 방안도 나오지만 협회는 “대표팀은 우리 소관”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런 기류 속에 KOVO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대표팀을 볼모로 삼은 협회의 주장에 KOVO도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 가운데 대표팀의 상처는 더 깊어지고 있다.
당장 남녀 대표팀은 또 대회에 나서야 한다. 월드리그, 월드그랑프리 등 이미 긴 일정을 소화한 대표팀 선수들은 기진맥진이다.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버티고 있지만 경기력 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코칭스태프가 “마지막 힘을 내자”고 독려하고 있지만 지원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빈약하다. 당장 전력분석시스템조차 다른 나라에 비하면 크게 떨어진다. 인력도, 기술도, 지원도 없다. 좋은 성적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현 상황에서는 당장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 또한 무리다. 답보 상태만 길어지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