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세터의 탈을 썼지만 역할은 해결사였다. 두산 김재호가 팀의 5득점 중 4득점을 본인 손으로 만들어내며 5연승에 앞장섰다.
김재호는 26일 서울 잠실야구장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리그' LG전에 1번타자 겸 유격수로 선발출장했다. 김재호는 4타수 2안타 4타점으로 팀의 5-4 승리에 앞장섰다.
사실 김재호는 9번 타순이 익숙한 선수다. 1군 주전급으로 도약한 2008년부터 이날 전까지 1070경기서 2931타석을 소화했다. 이 중 9번 타순으로 들어선 게 1932타석에 달한다. 절반 이상인 65.9%. 그 다음은 8번타순(524타석), 7번타순(191타석)이 순서를 이뤘다. 사실상 하위타선이 어울리는 선수였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김재호는 시즌 319타석 중 절반 이상인 196타석을 9번타순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김재호는 이날 포함 최근 네 경기서 세 차례나 1번타순에 들어섰다. 시작은 23일 문학 SK전. 당시 김재호는 팀이 치른 62경기 만에 1번타자로 들어서며 4타수 3안타로 펄펄 날았다. 24일 잠실 넥센전에서 선발 제외된 김재호는 25일 잠실 넥센전서 다시 1번타순에 들어서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올 시즌 1번타순 타율은 무려 5할5푼(20타수 11안타), 5타점에 달했다.
26일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김태형 두산 감독은 "아직 오늘 경기 배팅 오더를 확정하지 못했다"라며 조심스러움을 드러냈다. 김재호가 연일 활약하는 데도 확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체력부담이다. 고질적인 허리부상을 안고 있는 김재호는 수비 부담이 많은 유격수로 전 이닝을 소화한다. 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라인업이 공개됐을 때 김재호는 꼭대기에 이름을 올렸다. 김태형 감독이 장고 끝에 김재호를 다시 한 번 믿은 것이었다. 그리고 김재호는 이 믿음에 멋지게 부응했다.
0-1로 뒤진 1회 첫 타석은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두산은 후속 류지혁이 볼넷, 박건우가 중전 안타로 살아나갔지만 김재환과 닉 에반스가 아웃되며 동점을 만들지 못했다.
김재호의 진가는 2회 곧장 나왔다. 선두 양의지와 민병헌이 연이어 아웃된 상황. 오재일과 오재원이 연속 볼넷으로 불씨를 되살렸다. 타석에는 김재호. 그는 우중간 담장까지 굴러가는 깔끔한 2루타로 주자 두 명 모두 불러들였다. 두산이 2-1 역전하는 순간이었다.
LG는 3회 한 점을 뽑아내며 2-2 균형을 맞췄다. 그리고 4회, 김재호의 방망이가 다시 불뿜었다. 선두 오재일의 내야 안타와 오재원의 좌전 안타로 만든 무사 1·3루 기회, 김재호는 날카로운 좌전 안타를 때려냈다. 주자 두 명이 모두 홈을 밟았다. 이날 경기 4타점째였다. 김재호는 중계 플레이 과정에서 2루를 노렸지만 결과는 아웃. 하지만 김재호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두산은 엎치락뒤치락 승부 속에 LG를 누르고 5연승을 달렸다. 그 중심에는 '화려한 이중생활'을 펼치고 있는 김재호가 서있었다. /ing@osen.co.kr
[사진] 잠실=이동해 기자 eastse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