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화가 한국에서도 만들어진다면 정말 해보고 싶어요."
한국영화계의 문제점 중 하나는 여전히 남자배우들에 비해 여배우들의 활약이 적고 캐릭터에 한계가 있는 것이 꼽히고 있다. 사실 이것이 충무로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할리우드나 유럽에서는 여배우가 연기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좀 더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굳이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 '원더우먼'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국내 영화계에서는 극을 이끌어가는 여성 캐릭터의 확장성이 부족하다. 물론 이는 한국영화시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지만 말이다. 한국 여배우들이 인터뷰를 통해 종종 '부럽다'라고 언급한 영화와 캐릭터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 '블랙스완' 나탈리 포트만
'블랙스완'(대런 아로노프스키, 2011)에서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니나란 인물은 여배우들 뿐 아니라 남자배우들도 열망을 드러내는 캐릭터다. 연기와 발레라는 인접 예술을 하는 이들에게 영화는 남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순수하지만 우아한 백조 연기로는 최고로 꼽히는 뉴욕 발레단의 니나(나탈리 포트만)가 새롭게 각색한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백조'와 '흑조'라는 1인 2역의 주역으로 발탁된다. 하지만, 완벽한 백조 연기와 달리 도발적인 흑조를 연기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새로 입단한 릴리(밀라 쿠니스)가 니나처럼 정교한 테크닉을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관능적인 매력을 뿜어내 은근히 그녀와 비교된다. 스타덤에 대한 압박과 이 세상의 모두가 자신을 파괴할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니나의 이야기. 실제로 여배우들의 캐릭터에 대한 감정이입이 상당하다.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를 통해 제 83회 아카데미여우주연상 수상했다.
- '킬 빌' 우마 서먼
김옥빈 주연 영화 '악녀' 같은 작품이 '킬 빌'(쿠엔틴 타란티노, 2003)에서 어느정도 영감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한국영화에서 여성 액션히어로는 여러모로 도전정신이 필요한 캐릭터다. '킬 빌'의 우마 서먼과 같은 캐릭터는 액션에 재능이 있는 여배우들에게는 하나의 꿈이다.
영화는 어느 한적한 오후, 행복한 결혼식을 앞둔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와 그녀의 신랑, 그리고 모든 하객들이 의문의 조직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당하면서 시작한다. 그로부터 5년 후, 코마상태의 더 브라이드는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어렵게 깨어난다. 그리고 피로 얼룩진 과거가 그녀의 뇌리에 스치면서 서서히 복수의 리스트를 작성하기 시작하고 실행에 옮긴다.
-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제니퍼 로렌스
요즘 한국 여배우들에게 자주 오르내리는 외국 여배우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제니퍼 로렌스일 것이다. '헝거게임' 프랜차이즈도 그렇지만, '실버라이닝 플레이북'(데이빗 O. 러셀 감독, 2013) 속 제니퍼 로렌스는 여배우들이 '너무나' 탐내는 살아있는 캐릭터다. 여성 원톱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된 남자(브래들리 쿠퍼)와 남편의 죽음 이후 외로움 때문에 회사 내 모든 직원들과 관계를 맺은 여자가 그려나가는 힐링 코미디다.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티파니는 저돌적인 대시와 내숭 없는 애정 표현, 거침없는 행동으로 '돌+아이'와 순수한 사랑스러움을 넘나든다. 브래들리 쿠퍼와 첫 데이트(?)를 하는 레스토랑 신은 압도적. 제니퍼 로렌스는 이 영화로 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 '제로 다크 서티' 제시카 차스테인
'제로 다크 서티'(캐스린 비글로우 감독, 2013)는 여주인공 제시카 차스테인의 캐릭터도 그렇지만, 여성 감독과 여배우의 시너지란 점에서 국내 여배우들에게 일종의 동경심을 갖게 만든다. 여성 감독이 만드는, 남성보다도 더욱 남성적인 통찰력 있는 작품이다. 제시카 차스테인은 주인공인 CIA 요원 마야 역을 맡아 걸크러시를 발산했다.
영화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오사마 빈라덴의 행적을 추적했던 CIA 요원들의 10년간의 검거작전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극을 이끌어가는 마야라는 캐릭터는 처음 빈 라덴을 향한 추적작전에 투입될 당시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성실한 CIA 신입요원이었다. 그러나 진전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테러리스트들의 함정에 빠지고 설상가상으로 자폭 테러로 인해 친한 동료마저 잃게 되면서 점점 엄숙한 결단력을 가진 요원으로 변해간다. 제70회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레아 세이두
'가장 따뜻한 색 블루'(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 2013)는 레아 세이두란 묘한 매력의 프랑스 배우를 전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린 작품이다. 파란 머리의 신비로운 소녀 엠마를 열연한 레아 세이두는 세밀하고 감각적인 연기력에 더해 아름다우면서도 중성적인 매력으로 스크린을 압도한다. 여배우들에게는 파격에 대한 도전, 예술적 표현에 대한 자극을 안겨줄 만 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의 김민희와 김태리를 두고 이 영화 속 여주인공들을 상기하는 시선도 많았다.
영화는 평범한 고등학생 아델(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스치며 지나친 파란머리 소녀 엠마(레아 세이두)에게 사랑에 빠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퀴어 영화로도 분류되며 수위 높은 베드신으로도 화제를 모았는데, 영화의 작품성은 자극적일 수도 있는 설정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레아 세이두는 촬영의 힘든 과정을 상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어쨌거나 이 고통스러운 작품이 그를 배우로서 몇 단계 성장시킨것은 분명해보인다. 2013년 칸 국제영화제 최초로 감독과 두 배우가 황금종려상을 공동 수상했다. /nyc@osen.co.kr
[사진] 영화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