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외국인 투수 메릴 켈리(29)는 항상 유쾌하다. 다소 곤란한 질문에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런 켈리에게도 유독 씁쓸한 기억은 있다. 켈리는 포스트시즌에 대한 미련을 묻는 질문에 농담을 섞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SK 입단 후 켈리에게 포스트시즌 경험은 딱 1경기, 3이닝이었다. 2015년 넥센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선발 김광현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당시 브라운의 홈런포 등을 묶은 SK는 3-1로 앞서던 상황이었다. 크리스 세든을 2차전 선발로 두고, 김광현에 이어 가장 믿을 만한 카드인 켈리를 투입해 1차전을 반드시 잡겠다는 전략을 가동했다. 그러나 켈리는 7회 고종욱에게 적시 3루타를 맞는 등 2점을 내주고 동점을 허용했다. SK는 연장 접전 끝에 허무하게 졌다.
그랬던 켈리가 그 아픔을 지우기 위해 등판한다. SK는 5일 마산구장에서 열릴 예정인 NC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에 예상대로 켈리를 선발로 예고했다. 켈리는 SK의 5위가 확정된 순간부터 1차전 선발로 내정되어 있었다. 지난 9월 30일 대전 한화전에서 5이닝을 가볍게 던지며 몸을 풀었다. 4일 휴식 후 등판이지만 당시 투구수가 많지 않았고, 그 전에 푹 쉬어 체력은 문제가 없다. 경기 감각도 좋다. 스스로의 느낌도 좋다.
켈리는 올 시즌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하나다.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골든글러브의 유력한 후보이기도 하다. 시즌 30경기에서 190이닝을 던지며 16승7패 평균자책점 3.60을 기록했다. 3년 연속 18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팀 마운드를 지탱했다. 후반기 12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46, 9월 4경기에서는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하며 구위를 끝까지 가져 왔다.
통산 NC를 상대로는 10경기(선발 9경기)에서 2승3패 평균자책점 3.75를 기록했다. 마산에서는 총 4경기에서 승리 없이 1패 평균자책점 3.96이었다. 전체적으로 아주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평균 정도의 흐름이었다. 켈리의 집중력도 예민해져 있는 만큼 상대 선발 제프 맨쉽과 좋은 승부가 예상된다. 켈리도 모든 바이오리듬을 5일 등판에 맞추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개인적인 의지도 강력하다.
만약 켈리가 이날 SK의 승리를 이끌지 못한다면 SK의 시즌도 여기서 끝이 난다. 켈리의 시즌도 여기서 끝이다. 매년 계약을 하는 외국인 선수의 특성상 고별전이 될 수도 있다. 가뜩이나 켈리는 미국이나 일본 팀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있다. 켈리를 한 번이라도 본 팀은 10개 팀이 넘고, 2~3차례 이상 찾아와 유심하게 살핀 팀도 최소 5개 팀에 이른다. 켈리도 시즌 뒤 자신의 거취 문제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그러나 켈리도, SK도 이것이 고별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켈리는 팀이 반드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과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자신도, 팀도 당시보다는 많이 성장했다는 게 켈리의 생각이다. 동료들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 SK도 켈리의 능력을 믿는다. 또한 재계약에 대해서도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에이스’를 앞세운 SK가 가을무대를 스스로의 힘으로 연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