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에 이어) ‘국화꽃 향기’ ‘살인의 추억’ ‘연애의 목적’ ‘괴물’ ‘이끼’ ‘최종병기 활’ ‘은교’ ‘제보자’의 공통점은 배우 박해일이 출연했다는 것이다. 이 영화들을 볼 때마다 신기한 건 그 작품 속 캐릭터에 맞게 매번 그의 얼굴, 눈빛, 말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변신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예전에 봤던 작품 속 말투나 평소 본인의 톤이 튀어나와서 실망하는 일이 적지 않다. 웬만해선 180도 달라지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박해일은 지겨움의 공식에서 탈피한 것만 같다. 앞서 언급한 작품 속 그의 얼굴은 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각양각색이다. 박해일은 실패하기 싫어서 과거에 성공했던 비슷한 장르, 캐릭터를 고수하는 모험심 없는 배우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강단 있는 배우라고 말하고 싶다. 기자의 확언에 반기를 드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감히 든다.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감독 황동혁)은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의 왕 인조 앞에서 벌어지는 두 충신의 대립, 그리고 흔들리는 조선의 운명 앞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을 통찰력 있게 담아냈다. 김훈 작가의 간결하고 힘 있는 문체와 생생한 묘사가 출간 10년 만인 올해 스크린 위에 그려진 것이다.
박해일은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인조가 반정을 이끈 캐릭터고 원래 말 수가 적다는 실제 성격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기존의 작품들에서 봐왔던 인조를 똑같이 보여주면 재미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것들만 표현했다”고 차별점을 설명했다.
역사적으로 인조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대명 사대주의를 외치다가 정묘호란-병자호란을 겪었고 결국 삼전도로 나가 청태종 앞에서 무릎을 꿇고 청나라에 항복했다. 국내 정치는 물론 외세정치에서도 실권을 놓쳤고 정통적 주체성을 이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를 정확히 알고 시작했다는 그는 “감독님이 저를 캐스팅 하면서 유약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면서 예민한 인조를 보여주고 싶다고 이야기하셨다”며 “인조는 덕망 높고 리더십이 있는 왕들과 다른 느낌이다. 절실하게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청의 군대에 둘러싸여 있고, (외부의)강력한 압박과 협박이 오는 상황이면 어느 누구라도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해일은 “인조가 보는 방향이 관객들의 눈이라고 생각했다. 충신에 관한 이야기가 이 영화의 뼈대다. 그것에서 최대한 감정을 뽑아내는 게 최대 포인트”라며 “그들(신하들)이 한숨을 쉬게 만들게 정도로 괴로운 결정을 유보하면서 리액션을 결정해야 했다. 역사적인 인물인 인조에서 챙겨야할 부분도 있었다”고 작품과 캐릭터를 해석한 방향을 밝혔다.
“이번 작품은 첫 발을 내딛기가 어려웠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의 한 지점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나. 그래서 어떤 톤으로 보여주는 게 나을지 고민했다. 인조가 가진 모든 면모와 트라우마를 다 보여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가장 많은 대사가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오’ ‘그래서 나 보고 어쩌라는 것이냐’다(웃음). 그래도 내가 그의 복합적인 감정을 주려고 한 장면은 있다.”
2001년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통해 데뷔한 그는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로 관객들을 만나왔다. 이 인물들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던 비결은 그의 연기력 때문. 모두 달랐지만 그들은 항상 현실적이고 일상적이었다는 점이다.
박해일은 “시나리오의 감을 느끼면서 제가 재미있게 도전해볼 수 있는 측면이 다가오면 감독님과 얘기를 하면서 방향을 결정한다. 촬영을 마칠 때까지 (그 감정과 톤을)유지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며 “물론 나 혼자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감독님, 선배 동료 배우들, 스태프의 도움을 통해 받는다. 나 혼자 캐릭터들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데뷔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꼽으며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지만 데뷔작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purplish@osen.co.kr
[사진]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