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들, 특히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이들이 있다. 개성 강한 캐릭터를 빛나게 만들어주는 탄탄한 연기 내공이 뒷받침되어 있기 때문. 이로 인해 인생 캐릭터를 만들기도 하고, MBC '왔다! 장보리'의 이유리처럼 그 해 연기 대상까지 거머쥐는 영광을 얻기도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소름을 유발하는 악역들이 안방 시청자들을 압도했다.
상반기에는 SBS '피고인'과 OCN '보이스'가 놀라운 성과를 낸 가운데 엄기준과 김재욱이 '역대급 악역'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엄기준은 쌍둥이 형제인 차민호와 차선호 역을 맡아 1인 2역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자신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형까지 죽이는 악랄함부터 아버지에게 받았던 설움과 트라우마를 타인에게 푸는 섬뜩함으로 브라운관을 압도했다. 박정우 역의 지성과는 쉼없이 대립하며 놀라운 연기 대결을 보여주기도. 그러면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죄까지 뒤집어쓸 수 있는 순애보적인 모습으로 폭넓은 감정선을 과시, 시청자들의 애증어린 반응을 얻었다.
'보이스'의 김재욱은 소름끼치는 살인마 모태구로 분해 놀라운 연기 내공을 뽐냈다. 모태구는 권력형 살인마로 자신의 재력을 이용해 타인을 잔혹하게 살해해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둔탁한 쇠공을 이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신을 신격화해 심판을 한다며 입을 찢고 시체를 벽에 박아놓는 등의 끔찍한 살해 행각을 벌였다. 김재욱은 깊이감 있는 눈빛과 특유의 분위기, 순간 순간 변하는 표정만으로도 모태구의 심리와 성격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고급스럽고 우아함이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제작진의 바람을 100% 만족시킨 김재욱이 있어 '보이스'는 마지막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시청자들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하반기에는 OCN '구해줘'의 조성하와 SBS '언니는 살아있다'의 손여은이 안방 극장을 휘어잡았다. 사이비 종교 구선원의 비리를 파헤친 '구해줘'에서 조성하는 교주 백정기 역을 맡아 역겨운 두 얼굴로 악역 새 역사를 썼다. 흰 머리와 흰 눈썹으로 탈색까지 하며 외형부터 달라진 그는 등장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극 전체를 휘어잡았다. 진짜 사이비 교주가 된 듯 신도들을 홀리는 장면부터 임상미(서예지 분)를 영모로 만들려하며 추악한 실체를 드러내는 모습까지, 조성하는 신들렸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놀랍고 흡인력 높은 연기력을 과시했다.
종영을 앞두고 있는 '언니는 살아있다' 속에는 쉼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악녀들이 너무나 많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거짓말은 기본이고 살인 교사까지 하는 악녀들이 줄을 잇는 것. 하지만 손여은이 맡은 구세경은 조금 다른 행보를 걷고 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구세경은 아들에게도 냉정한 엄마였다. 타인의 성과를 아무렇지 않게 빼돌리고 사고로 위장해 타인을 죽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달희(다솜 분)와 계화(양정아 분)를 상대로 속시원한 한 방을 날리기도 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점차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모성애를 깨닫는 동시에 김은향(오윤아 분)와는 애틋한 워맨스를 형성했다. 손여은은 탄탄한 연기 내공으로 구세경의 드라마틱한 변화와 성장을 섬세하게 연기해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에 유방암 말기로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구세경을 살려달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parkjy@osen.co.kr
[사진] 각 드라마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