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치는 것 아닙니까”
외야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김기태 KIA 감독은 한 선수의 타격 훈련을 두고 화들짝 놀랐다. 외국인 타자 로저 버나디나(33)가 김 감독을 당황스럽게 한 주인공이었다. 김 감독은 버나디나가 지나치게 많은 타격 훈련량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다소 걱정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작 김 감독의 질문을 받은 박흥식 KIA 타격코치는 그저 웃었다. 그러면서 “걱정 말라. 그냥 놔두자”는 표현의 제스처를 취했다. 버나디나도 김 감독을 한 번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내 웃으며 방망이를 다시 잡았다. 버나디나는 이날 훈련을 가장 먼저 시작해 가장 늦은 순번 축에 끝냈다. 단순히 양만 많은 것은 아니었다. 실전 공백이 있는 KIA 타자 중에서는 타구의 질이 가장 좋았다.
김 감독은 “(지금 단계에서) 왜 저렇게 많이 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버나디나는 시즌 막판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경력이 있다. 경미하긴 했지만 아직은 조심해야 할 단계라 김 감독이 더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나디나를 직접적으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훈련 일정은 박 코치의 소관이기도 하지만, 버나디나의 경험을 믿고 또 존중하기 때문이다. 스프링캠프 당시부터 이어온 김 감독의 일관된 자세이기도 했다.
KIA 벤치는 ‘버나디나가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알아서 컨디션을 조절할 것’이라는 신뢰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도 잘했고, 몸 상태도 나아지고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정작 버나디나는 높은 강도의 훈련에도 불구하고 싱글벙글이었다. 타구는 빨랫줄처럼 뻗어나가 외야 담장을 훌쩍 넘겼다. 힘이 있었다. 타격을 한 뒤 소리를 지르며 동료들의 미소를 유도하기도 했다. 버나디나는 “컨디션은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이처럼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버나디나다. KIA의 기대감도 커진다. 버나디나는 올해 확실한 성과를 냈다. 시즌 초반 다소 부진하기는 했지만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났다. 시즌 139경기에서 타율 3할2푼, 27홈런, 111타점, 118득점, 32도루를 기록했다. 100득점-100타점을 기록했고,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장 근접한 선수이기도 했다. 여기에 수비력까지 발휘하는 등 고른 성적을 냈다.
버나디나의 비중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부동의 팀 3번 타자다. 최형우 앞에서 밥상을 차려야 하고, 때로는 앞서 출루한 주자들을 불러 들어야 한다. 시즌 중에는 이 몫을 잘했다. 100득점-100타점 클럽 가입이 이를 증명한다. 만약 버나니디가 부진할 경우 KIA 타선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짧게는 4경기, 길게는 7경기의 단기전 승부에서 이는 회복 불가능이 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만 성과가 확실한 선수라 굳이 나쁜 시나리오를 먼저 떠올릴 필요는 없다. 누구보다 강한 타구를 날려 보내는 모습에서 오히려 큰 희망이 보인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