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3대 명절로 흔히 크리스마스, 할로윈, 그리고 경록절을 꼽는다. 경록절? 맞다. 밴드 크라잉넛의 베이시스트 한경록이 매년 2월11일 여는 자신의 생일파티다. 올해에는 홍대 무브홀에서 열렸는데 600명 정도가 참석해 준비한 맥주 64만cc가 동이 났다. 최백호 강산에 등 선배 가수들은 물론 모노톤즈, 갤럭시 익스프레스, 폰부스, 로맨틱펀치, 라이프앤타임, 피해의식 등 동료 밴드들이 참석해 그의 생일을 축하했다. 물론 크라잉넛의 다른 멤버들도 왔다. 그야말로 봄을 재촉하는 홍대의 첫 페스티벌이다.
경록절의 주인공 한경록이 자신의 첫 솔로 앨범 ‘캡틴락’을 오늘(25일) 발매했다. 크라잉넛으로 활동한 지 22년만에, 자신의 별명인 캡틴락 이름을 걸고 처음 내는 셀프 타이틀 앨범이다. 크라잉넛과는 확실히 결이 다른 곡들이 10곡이나 빼곡히 담겼다. 한경록을 [3시의 인디살롱]에서 만나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고 앨범도 함께 들어봤다. 인터뷰, 스타트.
= 얼마전에 크라잉넛 인터뷰를 했었는데 또 본다.
“사진 잘 나왔더라.”
= 새 앨범 노래도 노래지만 뮤직비디오가 대단하다. 홍대 뮤지션 60여명이 출연했다. 그것도 이틀만에 불러모았다고 하니 역시 홍대 인맥왕답다.
“아, ‘모르겠어’라는 곡의 뮤비인데 11월에 공개된다. 크라잉넛의 김인수, 장기하와얼굴들의 이종민, 더 모노톤즈의 차승우,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박종현, 레이지본의 준다이 안경순, 칵스의 이현송, 잔나비의 최정훈 유영현 김도형 장경준, 싱어송라이터 곽푸른하늘 등이 출연해줬다. 아, 친하게 지내는 배우 박민지도 카메오로 나온다. 차승우와 박종현은 새 앨범에 피처링까지 해줬다.”
#. 인원이 하도 많아 나중에 엑셀파일로 명단을 받았다. ‘모르겠어’ 뮤비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김간지X하헌진(김간지 하헌진), 노바케인(김재화 도로시 윤성원 강주호), 더 모노톤즈(차승우 훈조 최욱노 하선형), 데드 버튼즈(홍지현 이강희), 라이프앤타임(진실), 럭스(원종희), 레이브릭스(서광민 유혜진), 레이지본(안경순 준다이), 문댄서즈(김진영 임채환 차이환),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조까를로스 까르푸황), 아시안체어샷(이용진), 연남동덤앤더머(김태진), 웨이스티드쟈니스(안지), 잔나비(김도형 유영현 장경준 최정훈), 제8극장(서상욱 임슬기찬 황민휘), 중식이(정중식), 칵스(이현송), 장기하와얼굴들(이종민), 크라잉넛(김인수), 킹스턴 루디스카(최철욱 서재화 성낙원 손형식), 펀시티(이상번), 폰부스(홍광선 이상민), 플라잉독(이교형), 피해의식(크로커다일), 이은철, 곽푸른하늘, 도마, 씨없는수박김대중, 박민지, 사이, 성원우, 안홍근 & 캡틴락(한경록)
= 잔나비는 비교적 어린 친구들인데 어떻게 알게 됐나.
“공연을 하다가 보기도 했고, 김창완 형님이 라디오 뒷풀이 자리에 불러줘 함께 술을 마시며 친해졌다.”
= 인맥이 대단하다.
“벌써 22년째 홍대라는 공간에서 활동해오고 있다. 조금 떴다고 방송만 하지 않고 계속해서 홍대 클럽 공연을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밴드들과 친분이 쌓이게 된 것 같다.”
= 이 뮤비와 경록절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사실 뮤직비디오 아이디어는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인 씨티알싸운드의 황현우 대표(까르푸황)가 냈는데, 경록절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돈 안들이고 새 앨범 및 캡틴락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사랑이고 뮤지션이니까.”
= 경록절은 언제부터 이렇게 규모가 커졌나.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생일날 많은 친구들이 왔다. 군 제대하고 나서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홍대의 가게를 빌려 생일파티를 열었다. 다른 손님들이 들어올 공간이 없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놀러오셨다. 90%가 뮤지션들이라 자연스럽게 즉석 잼도 열리면서 뮤지션들이 즐기는 페스티벌이 됐다. 올해는 스웨덴에서 라세린이라는 팝가수가 참석하기도 했다. 준비하는 술의 양도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올해는 맥주 64만cc를 비롯해 고량주 100병, 양주 50병을 준비했는데 새벽 1시에 동이 났다. 술은 협찬을 받고 있다.”
= 크라잉넛 활동으로도 바쁠텐데 솔로 앨범은 언제 준비했나.
“두 달 정도 준비했다. 크라잉넛을 오래 하다보니 습작곡이 30곡 가까이 된다. 크라잉넛 앨범에 수록하기 쑥스러운 개인적인 포크송, 이런 것들이 있다보니 이를 표현하고 싶었다. 제 생각에는 좋은 곡들인데 발표할 계기가 없으니까 캡틴락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내게 됐다.”
= 캡틴락이라는 별명은 팬들이 지어준 것인가.
“아니, 제가 지었다(웃음). 2005년부터 써오고 있다.”
= 이제 따끈따끈한 신곡들을 함께 들어보자. 우선 앨범 재킷이 근사하다.
“신창용 작가분이 정말 잘 해주셨다.”
= 홍대 극동방송쪽 3거리 같은데, 자세히 보니 ‘삼거리포차’가 아니고 ‘삼거리풍차’다.
“특정 가게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고, 내가 돈키호테 같은 이미지니까 ‘풍차’로 바꾼 것이다. 모터사이클을 탄 모습에서는 나폴레옹 이미지도 있다. 어쨌든 이 삼거리가 자본이 많이 유입되면서 예전보다 많이 소비적으로 변했다. 예전에는 삼거리에 낭만이 있었는데 이제는 (음반가게인) ’레코드 포럼’도 없어지고 이상한 전단지만 돌아다닌다. 물론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화를 향유하면서 건전하면서도 즐거운 쾌락을 즐겼으면 싶다. 이런 세태에 맞붙고 싶은 돈키호테가 그래서 앨범 재킷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 실제로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나.
“오늘 이 자리도 모터사이클을 타고 왔다. 야마하 SR400이라는 미들급이다. 시내주행용으로 너무 무겁지도 않고 좋다. 동네용으로는 50cc짜리인 혼다 밸리50S를 탄다.”
= 들고 있는 기타는.
“깁슨 SG다. 앵거스 영이 좋아하는 바로 그 기타다.”
= 첫 곡 ‘CaptainRock Waltz’는 피아노 왈츠곡이다.
“제가 알 파치노를 무척 좋아하는데, 영화 ‘대부’에 왈츠곡(Godfather Waltz )이 나온다. 요즘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표현할 수 있는 게 좀 더 많아졌다. 앨범 전체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이나 서곡 같은 곡이다. 이번 앨범은 전체가 어느 정도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마치 공연 셋 리스트를 짜듯이 구성했다. 요즘 음원만으로 들어서는 이 연결되는 맛이 없다. CD를 사서 들어야 한다(웃음).”
= 2번 트랙 ‘케찹스타(Catch Up! Stars)’가 타이틀곡이다.
#. ‘케찹스타’ 가사 = 시시한 걱정 따위 내게 말하지도 마 지나간 일들 다시 돌이킬 순 없잖아 / 다시 어둠을 찢고 발버둥쳐 죽을 힘 다해 주사위를 높게 던져 잭팟! 모든 걸 걸어 / 가만 있으면 꿈도 꾸지마 저 하늘의 별 잡히지 않아 고개를 들어 주먹을 쥐어봐 주사윌 던져 모든 걸 걸어 / 저 하늘의 별을 따긴 쉽진 않겠지 근데 가끔씩 몇 개 땅에 떨어지더라 / 그러니까 고갤 들어 하늘을 봐 다시 한번 내가 나를 돕지 않는다면 아무도 날 돕지 않아 / 가만 있으면 꿈도 꾸지마 저 하늘의 별 잡히지 않아 고개를 들어 주먹을 쥐어봐 주사윌 던져 모든 걸 걸어 / 아무 말도 듣지 마 때론 혼자라도 좋은걸 작은 먼지처럼 자유롭게 날아보자 / 서툴러도 괜찮아 저기 별들을 잡아보자 작은 눈짓에도 떨리던 그 날처럼
“별을 잡아보자, 따라가보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뉘앙스를 담은 곡이다. 뭔가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제 또래 친구분들한테 ‘별을 잡기에 절대 늦지 않은 나이다’라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사운드는 복고풍이다. 더 모노톤즈의 차승우가 기타와 보컬로 참여했다. 차승우와는 안 지 20년 된, 거의 의형제처럼 지낸다. 10년 전 ‘내가 앨범 내면 네가 기타 쳐주라’라고 했었다.”
= ‘모르겠어’가 3번 트랙이다.
“만들어놓은 지 꽤 된 곡이다. 당시 뉴스를 봐도, 인터넷을 검색해봐도, 온통 편가르기 싸우기만 할 뿐 헷갈리더라. 언론에서 말한 것을 믿어야 할까 싶기도 하고. 점점 진짜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그럼에도 말을 해야 한다, 표현을 해야 한다, 뮤지션이라면 음악으로, 화가라면 그림으로, 감독이라면 영화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고백을 해야 하고. 김수영 시인의 ‘눈’이라는 시의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뮤직비디오는 홍대 뮤지션들이 기타를 들고 ‘록은 살아있다,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샤우팅은 갤럭시 익스프레사의 박종현이 했다.”
= ‘하하’는 레게리듬이 유쾌하다.
“앞의 2곡이 너무 무겁게 달려왔으니까 좀 변화를 주고 싶었다. 세상은 힘들지만 그래도 웃어보자는 내용이다. 이 곡은 제비다방 2층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는데, 뒤 테라스에 있던 뮤지션들을 불러 즉석에서 코러스를 시켰다(웃음). 조까를로스, 박정우, 도마, 안홍근 등이 참여했다. 아, 슬라이드 로사의 박미영 선생님도 코러스에 참여해주셨다. 덕분에 노래가 정말 풍부해졌다. 맛깔나게 잘 표현해주셨다. 제가 크라잉넛의 메인보컬이 아닌데 선생님이 보컬 디렉팅을 많이 봐주셨다.”
= ‘알 파치노’, 역시 알 파치노를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
“알 파치노는 동경의 대상이다. 알 파치노라는 배우를, 인간을 너무 좋아한다. 채플린이 사람을 위로하는 희극배우라면, 알 파치노에게는 비극적인, 누아르적인 아름다움, 순수한 피가 있다. 어쨌든 이 곡은 몇년 전 스케치한 피아노를 위한 탱고곡으로, 유발이의소풍의 유발이가 아주 잘 연주해줬다. 유발이가 “오빠, 써봐’ 그러며 몇년 전 공책을 선물해줬고 그 공책에 처음 쓴 곡이 바로 이 곡이다.”
= 후렴에 나오는 ‘알파 알 파치노 카푸치노 모카치노’ 이 대목이 재미있다.
“재미를 위해 라임을 맞춘 것이다. ‘알파치노 카푸치노’ 이런 연극도 있었다.”
= ‘감기’는 대단히 서정적인 곡이다.
#. ‘감기’ 핵심가사 = 그렇게 아프게 뜨겁게 앓고 가는 봄날의 감기 / 그렇게 아프게 뜨겁게 앓고 가는 봄날의 감기/ 나도 모르게 계절이 바뀌고 운명처럼 만난 감기가 나를 아프게 하네 슬프게 하네 / 시간이 지나고 감기가 떠나면 거짓말처럼 더 강해지겠지 사라져가네 추억만 남아
“포크송이며, 실제 지독하게 감기에 걸렸을 때 만든 곡이다. 감기가 너무 지독해서 새벽에 기침하다 일어나서 감기약 먹고 몽롱한 상태에서 썼다. ‘감기’ 대신 ‘사랑’을 집어넣어도 된다. 감기와 사랑은 자신도 모르게 걸린다. 둘 다 뜨겁기도 하고. 지금 들리는 클라리넷은 기타리스트에 엔지니어로 참여한 박진호가 불었다. 여러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 7번 트랙 ‘제비다방’은 2015년에 나온 ‘제비다방 컴필레이션’ 앨범에 실렸던 곡이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샤우팅 보컬 박종현과 슬라이드 로사의 박미영의 보컬이 가미된, 엄청 강력해진 울트라 스펙터클 뉴클리어 에너지 버전이다(웃음). 제비다방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뜨거운 욕망을 표현해봤다.”
= ‘간식’은 왠지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가 연상된다.
“어,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드나? 사실은 ‘톰과 제리’를 보다가 만든 곡이다. 신기하다. 이 곡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박정우가 불렀는데 정말 힘 빼고 쉽게 부르더라. 카주 연주는 도마가 했다. 지금 들리는 악기는 밴조(황성준)다. 폴카 리듬에 밴조가 이끄는 컨트리사운드, 그러다 디스코리듬으로 바뀐다.”
= 9번 트랙 ‘두발자전거’가 타이틀곡이었어도 좋을 것 같다.
#. ‘두발자전거’ 가사 = 계속 자꾸 넘어졌지 두발자전거 처음 타던 날 마치 알을 깨고 이 세상에 처음 나온 어린 새처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지 / 두발자전거 처음 타던 날 계속 나아가기 위해 페달 정신없이 밟아야만 했네 마음대로 된 건 없지 세상만사 결코 쉽진 않았지 나를 바닥으로 잡아끄는 중력에 저항하려 했지 / 너는 내게 묻고 있지 다시 일어설 수 있냐고 / 지금 장난해? 난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 날아, 날아보자! 나의 발목을 붙잡는 악몽을 뿌리치고 날아! 밟아, 밟아보자! 페달 신나게 밟고 가자 시원한 바람 맞고 밟아! / 맞아, 네 말이 맞아! 나를 보고 웃어주며 왠지 될 것 같은, 되고 싶게 만들던 그 눈빛이 나를 살아가게 하네, 페달 밟아가게 하네!
“내부에서 그런 얘기가 있긴 했다(웃음). ‘케찹스타’ ‘모르겠어’ ‘알 파치노’에 이어 다시 무게감이 있는 곡이다. 자전거에서 보조 바퀴를 뗀 그 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두발자전거는 계속 페달을 밟아야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런데 내가 계속 페달을 밟을 수 있게끔 옆에서 얘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요즘에는 너무 없다.”
= 10번 트랙 ‘둘이서’로 앨범이 마무리된다.
“과메기를 먹다 만들었다. 영덕 사는 친구가 철이라고 과메기를 보내줬는데, 음악 하는 친구 집에서 먹다가 예쁜 기타가 있길래 쳐보다 만들었다. 지금 들리는 하모니카는 군대에서 한 달 선임이었던 권병호가 해줬다. 곡은 떼창으로 마무리된다. ‘그동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느낌?”
= 10곡을 쉼없이 들었더니 배가 다 부르다. 올해도 계속 바쁠 것 같다.
“오늘도 인터뷰가 끝나면 저녁 때 크라잉넛 합주에 가야 한다. 내년 3월을 목표로 정규 8집을 준비하고 있다. 10월말에는 미국 달라스 공연이 있고, 11월에는 윤도현이 MC를 보는 엠넷 ‘더 마스터-음악의 공존’에 출연한다. 11월11일에는 ‘캡틴락’ 발매기념공연, 12월말에는 크라잉넛 연말콘서트가 열린다.”
= 수고하셨다. 새 앨범을 많은 분들이 들었으면 좋겠다.
“수고하셨다. 8집 때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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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