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세계 시네필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감독 중 한 명은 드니 빌뇌브(Denis Villeneuve)이다.
1967년생 프랑스계 캐나다 출신인 드니 빌뇌브는 1998년 '지구에서의 8월 32일'로 데뷔한 이후 '폴리테크닉'(2009), '그을린 사랑(2010)' '에너미(2013)',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컨택트'(2016) 등을 연출하며 명성을 쌓았다. 최근작은 '블레이드 러너 2049'이고 할리우드 입성작은 2013년 개봉한 '프리즈너스'이다.
드니 빌뇌브의 신작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흥행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의 명성을 공고히 했다. 적어도 원작의 아우라를 그대로 지킬 수 있는 우아한 SF를 만들 감독은 많치 않으니 말이다.
많은 배우들이 그와 함께 작업하기를 희망한다. 이는 그가 배우들을 '재발견'하게 만드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의 작품은 대체로 몰랐던 정보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과정으로 그려지며 하나에 몰두에 그것을 파헤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특징이 있다. 빠른 속도감과는 거리가 멀고, 정적이고 느릿하게 엄청난 몰입감을 안겨주는데 그 과정에서 배우의 연기력은 절대적이다.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의 에밀리 블런트는 블록버스터 '루퍼', '엣지 오브 투모로우' 등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았지만 적어도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더 유명했다. 그를 새침한 이미지의 조연급 정도로만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보고는 다소 놀랄 것이다.
영화는 신념과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FBI요원으로 분한 그가 얼마나 총이 잘 어울리는지를 넘어, 얼마나 강인하고 섬세하게 연기할 줄 아는 배우인지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인 베네치오 델 토로 역시 마찬가지. 그는 워낙 선 굵은 카리스마를 지닌 남성적인 배우로 유명하지만 드니 빌뇌브를 만나 다시금 명연기를 펼쳤다. 복수에 사로잡힌 정체 불명의 작전 컨설턴트로 분한 베네치오 델 토로의 손 떨림, 총 잡는 자세와 눈빛 하나하나가 경이롭다는 반응을 얻었다.
할리우드 핫스타 제이크 질렌할과 휴 잭맨 역시 '프리즈너스'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결로 관객들에게 다가왔다.
제이크 질렌할은 워낙 다작을 하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이지만 이 작품에서 보여준 집념강한 고독한 형사는 보는 이를 압도했다. 오직 범인을 잡는데만 몰두하며 서서히, 그러면서도 본능적인 감각으로 범인을 뒤쫓아가는 형사 제이크 질렌할의 힘 있는 연기는 영화의 몰입감을 더했다.
휴 잭맨에게는 그의 대표 캐릭터인 '울버린'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아이를 유괴당한 아빠 휴 잭맨은 관객들에게 '낯선 얼굴'을 많이 선보였다. 아빠이기에 강하지만 인간이기에 나약한 이중적인 존재를 세밀하고 공감 있게 표현해냈다.
독특한 SF물 '컨택트'의 에이미 아담스는 범상치 않은 내용 만큼 드라마를 실제라고 믿게 만드는 배우의 힘이 중요했는데, 이를 훌륭하게 해 냈다. 그는 정적인 카리스마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SF물의 새로운 여자주인공-어느 날 갑자기 전세계 곳곳에 나타난 의문의 쉘과 자신 만의 방법으로 소통하는 언어학자 루이스를 보여줬다.
에이미 아담스는 워낙 유연하게 연기 잘하는 배우로 유명했지만 전실함, 혼란스러움, 사랑과 회한 등이 뒤섞인 여러 감정선의 어려운 캐릭터를 탁월한 이해력으로 선보였다는 평이다.
최근작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의 재발견은 해리슨 포드이다. 영화는 비록 흥행에 실패했고, 분량 역시 많지 않지만 그가 얼마나 존재감 있는 연기자인지를 다시한 번 느끼게 한다. 35년 만에 나온 속편에서 여전히 오래 전 블레이드 러너인 릭 데커드를 연기하는 해리슨 포드는 왜 그가 한 시대를 주름잡은 배우였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nyc@osen.co.kr
[사진] 게티이미지, 영화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