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차고 밝게, 마음껏 날개를 펼쳐라".
지난 6일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 훈련장에 첫 모습을 드러낸 한용덕(52) 한화 신임 감독이 선수단 미팅에서 전한 메시지였다. 전날 밤 선수단 상견례에서 먼저 파이팅을 선창했던 한용덕 감독은 "일부러 더 밝게 하려 한다. 선수들이 눌려있는 부분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파이팅을 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코치 시절부터 오랜 트레이드마크였던 배팅볼을 감독이 되어서도 똑같이 던진다. 글러브를 착용하고 정성껏 공 하나 하나를 뿌린다. 선수들의 집중력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훈련 후에는 선수들과 함께 흩어진 공을 모은다. 선수들에게 농담도 아끼지 않고 있다. 경기 중에도 덕아웃에 앉지 않는다. 서서 경기를 보며 선수들처럼 박수를 치고 목청껏 화이팅을 외친다.
지난 5년간 한화는 김응룡 감독과 김성근 감독, 야구계 대표적인 큰 어른들이 감독을 맡았다. 70대 고령이라 선수들과 세대 차이는 불가피했다. 카리스마를 앞세운 권위형 리더십은 과거에 통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한용덕 감독은 권위를 내려놓고 먼저 선수들에 다가간다. 짧은 한마디라도 관심을 표한다.
지난 11일 요미우리와 연습경기에서 11-1 대승을 거둔 뒤 자체 MVP로 선정한 3명의 선수들에겐 소정의 상금을 담은 봉투도 직접 전달했다. 두산 수석·투수코치 시절에도 한 감독은 함덕주 등 어린 선수들이 호투했을 때 만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며 동기를 부여했다. 한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수들도 한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과거 투수코치로 함께한 정재원은 스스럼 없이 손가락 하트를 표시할 정도. 한화 관계자는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성격의 선수들도 먼저 표현하게 만드는 것이 감독님의 가장 큰 장점인 듯하다. 선수들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선수들뿐만이 아니다. 코치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했다. 선수 지도에 있어 한 감독이 일일이 관여하지 않는다. 송진우 투수코치는 "야간에 기술 훈련 대신 멘탈 훈련을 위한 시간을 많이 마련했다. 팀 성적이 안 좋은 마당에 야간 연습을 하지 않으면 감독 입장에서 거북할 수도 있을텐데 감독님께서 코치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주신다"고 밝혔다.
한용덕 감독은 "나도 코치를 오래 했지만 감독이 파트별로 관여하면 코치들이 힘들어진다. 투수코치 출신이기에 특히 투수 쪽에선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자제하고 있다. 멀리서 지켜보고 나중에 자리가 됐을 때 이야기하는 게 맞다고 본다"며 "그래서 유능한 코치님들을 모셔온 것이다다. 코치들이 역량을 발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감독은 "요즘은 야구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서로 소통이 제일 중요하다. 감독이 방해가 돼 선수·코치들과 소통이 끊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선 안 된다. (주변에서) 너무 관여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감독으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감독은 전체적인 판을 짜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자신의 감독관을 밝혔다.
아직 캠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요미우리를 상대로 첫 경기는 3-5로 패했지만 내용이 좋았고, 두 번째 경기는 11-1로 크게 이겼다. 확 바뀐 캠프 분위기가 경기 내에서도 나타난다. 한용덕 감독의 탈권위 리더십이 움츠러든 독수리들의 날개를 활짝 펴게 한다. /waw@osen.co.kr
[사진] 한화 이글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