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계 명배우에서 감독으로서 아직도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는 정형석은 제작, 각본, 연출을 맡아 압도적인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30여 년의 세월동안 변함없는 열정으로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영화감독이자 공연연출가 겸 극단 대표이지만 1988년 현대극장의 배우로 데뷔했다. “24~25살에 극단에 들어가서 8년 정도 연기자 생활을 했다. 주로 뮤지컬을 했었는데 워낙 큰 곳이라 대선배들이 많았다. 같이 활동했던 동기가 배우 김희원이다. 저랑 희원이가 스피커를 나르며 활동했었다”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정 감독이 연기를 접고 연출에 관심을 갖은 이유는 명확했다. 공연계에서 나름 잘 나가는 ‘주연 배우’이지만 그 자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기약할 수 없을 뿐더러 선택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미래가 명확치 않아 불안한 마음이 컸었다고. 하지만 배우를 그만둔 것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고 했다.
“서른 살이 되면서 30대에는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길게 고민할 것도 없이 단칼에 극단에서 나왔다. 한창 전성기 때 그만두고 나와서 주변에선 ‘미친놈’이라고 하더라. 무엇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건 아닌데 '이제 무엇을 하며 살까?'라는 걱정을 하다가 시나리오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나리오 작가 교육을 받았다.” 정 감독은 극단에서 나온 이후 작가가 되기 위한 시나리오 쓰기 공부를 2년간 했다고 한다.
정 감독은 “영화 ‘뽕’을 만드신 윤삼육 감독님이 제게 ‘너는 연출을 해야 돼’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씀 덕분에 연출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감독을 해볼까?’ 싶었다(웃음). 지금은 잘 나가던 배우를 그만둔 것에 후회가 없다. 저는 안 되는 일을 오래 붙잡고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다시 공연계로 왔지만 배우-작가-감독을 하니 전체를 바라보고 잘 될지 안 될지 예측하는 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정형석 감독은 20대 시절의 무대 경험을 살려 배우로서 작품에 참여하기도 한다. 인연이 닿는 상업영화에서 단역을 맡아 깜짝 출연하는 것. 연기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는 아니고 출연료를 받아 자신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들에게 출연료를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동안 ‘범죄도시’ 회갑연 사회자, ‘아티스트:다시 태어나다’ 진행자, ‘아수라’ 송감찰관, ‘고산자, 대동여지도’ 선원, ‘검사외전’ 송교위, ‘내부자들’ 수석기자2, ‘제보자’ 이장환 비서, ‘방황하는 칼날’ 서울형사1, ‘남쪽으로 튀어’ 좋은 양복, ‘의뢰인’ 껄렁형사, ‘도가지’ 출판사사무실 직원, ‘유아독존’ 기석 역 등 1998년부터 다수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그렇게 출연료를 받아서 배우들에게 출연료를 주고 있다. 연극이나 저예산 영화는 굳이 투자를 받지 않아도 제 스스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상업영화는 투자-배급사를 찾는 과정이 사람을 너무 지치게 하는 것 같다. 제가 추구하는 작업 스타일과는 멀다. 그렇다고 상업작품을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제 힘으로 능력에 맞춰서 하고 싶다. 지금도 기획 중인 상업영화는 있다.”(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purplish@osen.co.kr
[사진]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