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살 권리, 환경에 대한 인식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분야가 있다. 디젤 엔진을 쓰는 노후 된 대형 건설 기계들이 그렇다. 건설경기 중심의 한국 경제 성장을 주도한 주역이라는 이유로, 자동차에 비해 숫자가 적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검사 기준조차 없는 실태다.
건설기계는 승용차에 비해 당연히 보급대수가 적다. 하지만 그 적은 수의 건설기계가 뿜어내는 오염물질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건설기계의 범주에 속하는 27종 중 원동기 인증 대상이 되는 건설기계는 모두 9종이다. 덤프트럭, 콘트리트믹서트럭, 콘크리트펌프, 불도저, 굴삭기, 로더, 지게차(전동식제외), 기중기, 롤러다. 이 중 덤프트럭, 콘트리트믹서트럭, 콘크리트펌프는 그나마 정기검사 조항이 있어 운행차 배출허용기준을 만족해야만 운행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무부하 상태에서 하는 검사이기 때문에 실제 돌이나 토사를 가득 싣고 달릴 때의 상황은 아예 통제 밖이다.
불도저 굴삭기 지게차 등 나머지 6종은 검사제도 자체가 없다. 소유자의 자율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2009년도 건설기계 현황 자료 현황을 보면 전국의 건설기계는 모두 36만대로 전체 차량대수의 2%다. 이 중 수도권에 12만 5,000대가 집중 돼 있다. 36만대 중 지게차가 11만 8,000여 대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11만 3,000여 대의 굴삭기다. 그런데 국립환경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차량의 2%밖에 되지 않는 건설기계가 대기오염에 기여하는 비율은 무려 19.9%에 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건설기계의 특성상 많은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 대형장비이고, 승용차와 달리 20년 이상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노후 장비들은 환경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을 때 제작 된 기계들이기 때문에 오염물질 배출량은 심각하다. 영세업자들의 생업이 달린 문제라 당장 폐차를 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최소한 배출원인 엔진이라도 교체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 된다.
물론 정부 지원으로 엔진교체 사업이 벌어지고 있지만 속도는 더디다. 정부는 내년부터 2024년까지 노후 건설기계 1만여 대의 엔진을 교체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환경 기준이 정립 된 2006년 이전 등록 된 기계는 20만 1346대나 된다. 1만여 대는 엔진교체가 시급한 기계의 5%에 불과하다. 2103년부터 시작한 이 사업으로 올해까지 1,726대가 엔진을 교체했을 뿐이다.
최근 OSEN은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이 10년 이상 된 노후 굴삭기의 매연배출 실태를 점검하는 현장을 동행취재했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노후 엔진 교체사업장에는 2006년 등록 된 굴삭기와 전자식 엔진으로 교체한 2002년식 굴삭기가 도착해 있었다.
두 굴삭기에 시동을 걸고 작업상태와 비슷한 수준의 부하를 걸었더니 시커먼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잠시 검사 현장을 지켜보는 동안에 벌써 속이 메스꺼워졌다. 상대적으로 새 엔진으로 교체 된 굴삭기는 육안으로도 시커먼 매연이 제거 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매연검사는 노후 경유차나 건설기계의 엔진교체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이알인터내셔널이 진행했다. 이 업체는 정밀한 배출가스 측정 및 실험장비를 갖추고 있다. 측정방식은 무부하급가속으로 진행했고, 측정장비는 광투과식 SSE 300M이었다.
측정값은 크게 차이가 났다. 유해 물질이 배기과정에서 어느 정도 걸러지는 지를 나타내는 불투과율이 97%대 4%로 대비 됐다. 폐차를 할 수 없다면 엔진이라도 바꿔야 하는 시급한 이유를 검사 장비가 숫자로 말해주고 있었다.
측정을 진행한 이알인터내셔널의 김진호 상무는 “노후 건설기계의 엔진을 전자식으로만 교체해도 매연 배출량을 90% 이상 줄일 수 있다. 운행중인 비도로 건설기계 중 비중이 높은 굴삭기, 지게차를 우선적으로 엔진교체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점검 현장에 동행한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도 "경유 승용차에 편중된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노후 건설기계쪽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00c@osen.co.kr
[사진] 엔진이 교체 되지 않은 노후 굴삭기와 엔진 교체가 이뤄진 굴삭기 2대를 놓고 매연 측정을 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임기상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대표(사진 가운데)와 김진호 이알인터내셔널 상무(사진 오른쪽)가 노후 굴삭기의 엔진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