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못 속였다. 11년 전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오르게했다.
선동렬 감독이 이끄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표팀은 17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대만과의 맞대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이날 나온 유일한 타점의 주인공은 ‘막내’ 이정후였다. 이정후는 김하성이 볼넷으로 출루한 6회 2사 1루 상황에서 대만 선발 투수 천관위를 공략해 우익수 키를 넘기는 3루타를 날렸다. 김하성이 홈으로 들어오기에 충분한 타구였다.
일본에게 패배했던 만큼, 대만전까지 내주면 한국의 결승 진출은 좌절된다. 그만큼, 이정후의 적시타는 천금 같았다. 계속된 0의 균형을 깬 만큼, 이정후의 적시타는 분위기를 가지고 오는 한 방이었다.
이정후의 3루타는 지난 2006년 아버지 이종범 대표팀 코치가 현역시절 활약을 쏙 빼닮았다. 이종범 코치는 지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일본전에서 0-1로 지고 있던 8회 1사 2,3루 상황에서 일본의 후지카와 규지를 상대로 2루타를 날려 역전을 만들어냈다. 비록 3루로 추가 진루를 노리다가 아웃이 됐지만, 역전에 성공한 한국은 경기를 잡고 ‘도쿄대첩’ 신화를 만들었다.
일본 언론에서는 "주니치에서 뛴 이종범 코치의 아들 이정후가 결승타를 쳤다"라며 일본에 나란히 활약한 부자(父子)의 모습을 조명하기도 했다.
아들의 판박이 활약에 이종범 코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고 짧은 말로 아들의 적시타를 축하해줬다. 이어서 “무엇보다 오늘 이긴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선수 모두가 잘해서 나온 결과”라고 말을 아꼈다. 대표팀 코치로서 개인적인 정보다는 대표팀 선수 모두를 챙기려는 마음이었다.
동시에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대표팀의 공격적인 주루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종범 코치는 “유지현 코치와 상의해 타이밍을 잡고 있다. 아무래도 상대를 잘 알고 있어 공격적으로 주루를 선택했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주고 있는것 같다”며 “선수들이 잘하니까 좋다. 앞으로의 희망이 보였다”고 흐뭇해했다.
한편 이정후도 승리를 이끈 자신의 적시타에 기뻐했다. 경기 후 이정후는 "중학교 3학년 때 대표팀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적 있다. 오늘 안타는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라고 소감을 전하며 "앞 타석에서 슬라이더를 쳤는데 멀리 뻗지 않아 다시 슬라이더를 노렸는데, 마침 공이 들어왔다. 정말 열심히 뛰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 bellstop@osen.co.kr
[사진] 도쿄(일본)=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