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것이었다. 우리가 바란 태극마크를 단 대표팀의 모습. 20대 초반의 '젊은 피'로 구성된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야구대표팀이 태극마크에 어울리는 바람직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1라운드 예선 탈락한 대표팀에 비난이 쏟아진 것은 일부 대표 선수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패배가 유력한 상황에서 실웃음,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장난스런 태도 그리고 이전보다는 옅어 보이는 열정. 선수들의 속마음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겉으로 보여진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해 보였다.
지난 7월, 선동렬 감독은 대표팀 전임 감독에 선임된 후 첫번째로 '태극마크의 자부심'을 특별히 강조했다. 선 감독은 "요즘 젊은 선수들은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런 쪽의 강조를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회를 앞두고 고척돔에서 열린 합숙 훈련, APBC 대표팀 선수들의 훈련 풍경은 과거 대표팀과는 사뭇 달랐다. 투수, 포수, 내야수가 다 함께 모여 시뮬레이션 훈련을 할 때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투수와 내야수들은 짝다리를 짚고 서 있는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뒤로 모은 채 동료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코칭스태프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멀리서 봐도 진지함이 묻어 나왔다. 배팅과 펑고 등 훈련을 이동할 때도 선수들끼리 농담이나 장난 같은 것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군기가 바짝 서 있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에게 '마치 청소년대표팀의 고교생 같다'고 말하자, "선수들이 매우 진지하고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APBC 대표팀 선수들은 훈련부터 자세가 달랐다.
훈훈한 에피소드. 합숙 훈련에서 정현(kt)은 유지현 수비코치에게 '아침 특별 수비 훈련'을 자청했다. 주로 유격수로 뛴 정현은 대표팀에서 3루수를 맡았고, 부족한 부분을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유 코치에게 도움을 청했다. 처음 만난 유 코치에게 연락하기 위해 같은 팀 안익훈에게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했다고 한다. 유지현 코치는 "선수가 전화로 훈련을 부탁한 것은 처음"이라며 흐뭇해했다.
이처럼 선동렬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훈련 기간부터 선수들이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자세와 열정을 높이 샀다. 대부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대표팀에 발탁된 20대 초반의 선수들은 어깨에 달린 태극마크의 무게와 자부심을 잘 알고 행동했다.
실력은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열정과 투지는 25명 선수 모두가 한마음이다. 일본전과 대만전. 그라운드에서 실수가 나와도 스스로 어이없어하는 '실소'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공격에서 만회한다는 각오로 더 열심히 뛰었다.
한일전에서 연장 10회 끝내기 안타를 맞은 이민호(NC)는 아쉬움에 한동안 마운드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팀 동료인 하주석(한화), 류지혁(두산) 등이 올라가 이민호를 위로하며 데려왔다. 9회초 4-3, 연장 10회초 7-4로 앞서던 경기를 패한 대표팀 선수들은 선동렬 감독이 덕아웃으로 돌아오라고 손짓을 할 때까지 그라운드에서 분함을 감추지 못했다.
연습경기에서 스파이크에 찍혀 왼무릎을 3바늘 꿰맨 박민우(NC)는 일본, 대만 상대로 1루에서 기막힌 2루 태그업을 성공시키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선보였다. 무릎 상태에 개의지 않고 몸 사리지 않았다. "일본 가서는 실밥이 터지더라도 뛰겠다"고 자신했던 박민우에게 부상은 딴 사람 얘기다.
한국은 일본, 대만과는 달리 와일드카드(만 25세 이상 선수)를 발탁하지 않았다. 한국전 투런 홈런을 친 일본의 4번타자 야마카와는 와일드카드로 뽑힌 선수다. 반면 우리는 20대 초반 또래 선수들이 똘똘 뭉쳐서 열정과 투지가 넘치는 대표팀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19일 오후 6시 일본과 결승전을 치른다. 박세웅(롯데)이 선발로 나선다. 예선전 연장 끝내기 패배의 아픔을 되갚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려고 총력전을 벌일 것이다. 설령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대표팀은 이미 많은 것을 보여줬고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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