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 뒤의 36번은 마지막 순간 국민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등번호 36번의 무게감, 혹은 운명일까. 대표팀은 '캡틴' 구자욱(삼성)이 침묵한 상황에서도 결승에 올랐다. 구자욱이 그 기분 좋은 전설을 이을 차례다.
선동렬 감독이 이끄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17' 대표팀은 19일 일본 도쿄돔서 일본과 대회 결승전을 치른다. 대회 첫 경기 일본전을 7-8로 분패했으나 대만전 1-0 승리로 결승행을 확보한 상황. 일본은 한국과 대만을 차례로 누르며 한국의 맞상대로 결정됐다. 한국은 박세웅(롯데), 일본은 다구치 가즈토(요미우리)가 선발등판한다.
대표팀은 두 경기서 승부치기 제외 5점을 뽑아내는 데 그쳤다. 득점권에서 16타수 1안타로 침묵 중인 타선이 답답하다. 그 중에서도 중심타자 구자욱의 침묵은 더욱 그렇다. 구자욱은 이번 대회에 앞서 등번호 36번을 달았다. 소속팀에서는 '국민타자' 이승엽의 은퇴 후 영구결번으로 남은 번호. 구자욱이 36번을 달 기회는 이적 혹은 대표팀 뿐이다. 구자욱은 이승엽에게 "대표팀에서 36번을 달고 싶다"고 말했고 이승엽도 "그래주면 내가 고맙다"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다. 구자욱은 2경기 모두 3번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출장했다. 그러나 일본과 첫 경기서 5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고개를 떨궜다. 0-0으로 맞선 3회 2사 1루, 4-1로 역전에 성공한 4회 2사 2·3루서 모두 2루수 땅볼로 물러났다.
대만전도 비슷했다. 구자욱은 1회 첫 타석 1사 2루서 볼넷을 골라나가며 찬스를 이었다. 그러나 3회에는 삼진, 6회와 7회에는 범타로 물러섰다. 이번 대회 2경기서 8타수 무안타 1볼넷에 그친 것.
연습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표팀은 국내에서 넥센(2경기)과 경찰 야구단을 상대로 연습 경기를 치렀다. 구자욱은 경찰 야구단과 마지막 연습경기서 3타점 3루타를 때렸지만 타율 자체가 2할(10타수 2안타)로 높지는 않았다. 연습 경기 때 부진이 실전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것.
'36번 선배' 이승엽의 신뢰는 두터웠다. SBS스포츠 특별 해설위원으로 대만전을 지켜본 이승엽은 "구자욱에게 한일전 종료 후 '관광 갔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라며 너스레를 떤 뒤 "분명 살아날 것이다. 2시즌 연속 3할대 중반 타율은 아무나 치는 게 아니다"라고 믿음을 보냈다.
부진에 빠진 선수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때려내는 것. 이 만화같은 장면은 이승엽에게 익숙하다. 이승엽은 2008 베이징올림픽 예선 7경기서 타율 1할3푼6리(22타수 3안타)로 침묵했다. '국민타자'에 대한 크나큰 기대감이 조금씩 실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일본과 준결승전 2-2로 맞선 8회, 이승엽은 결승 투런포를 때려냈다. 이승엽은 경기 후 눈물을 흘리며 부담을 털어냈다. 여세를 몰아 쿠바와 결승전서 선제 투런포를 때려낸 그다.
평행이론의 요건은 마련됐다. 구자욱이 침묵했지만 대표팀은 결승 무대에 올랐다. 성적이 중요한 대회는 아니라고 하지만, 한일전 2연패는 달갑지 않다. 타선 침묵에 빠진 대표팀에서 구자욱의 반등은 신호탄이 될 수 있다. 구자욱이 36번 평행이론에 방점을 찍을지 지켜볼 일이다. /i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