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이었다. '일본판 유희관' 다구치 가즈토(22·요미우리)가 한국 타선을 잠재우며 일본 우승에 앞장섰다.
선동렬 감독이 이끄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2017' 대표팀은 19일 일본 도쿄돔서 열린 일본과 대회 결승전을 0-7로 패했다. 선발투수 박세웅(3이닝 1실점)에 이어 김명신(⅓이닝 1실점)-김윤동(1이닝 2실점)-김대현(1이닝 2실점)-이민호(1이닝 1실점) 등 불펜투수들이 고전했다. 반면, 일본은 선발 다구치가 7이닝 3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으로 우승을 이끌었다.
대표팀은 일본과 첫 경기서 일본의 에이스 야부타 가즈키(히로시마)를 무너뜨렸다. 야부타는 3⅓이닝 3피안타(1피홈런) 3볼넷 1탈삼진 3실점으로 무너졌다. 볼이 28개, 스트라이크가 31개로 제구가 나빴다. 4회 흔들리던 야부타를 공략한 타선의 집중력이 돋보였다.
비록 일본전은 패했지만 이튿날 대만전 승리로 결승행을 확보한 상황. 일본과 대만의 경기 결과에 따라 매치업 상대가 정해질 예정이었다. 일본은 대만전서 이마나가 쇼타(요코하마)를 내세웠다. 이마나가는 6이닝 3피안타 12탈삼진 무실점 괴력투로 대만의 예봉을 꺾었다. 일본은 이마나가의 역투에 힘입어 8-2 승리로 결승에 올랐다.
한국으로서는 이마나가 카드가 결승에 쓰이지 않았기에 한숨 돌릴 법했다. 하지만 다구치 카드 역시 쉽게 볼 투수는 아니었다. 다구치는 올 시즌 일본프로야구 26경기에 등판해 170⅔이닝을 소화하며 13승4패, 평균자책점 3.01을 기록했다. 신장 171cm의 단신으로 최고구속은 130km대에 불과했지만 2년 연속 10승 반열에 오른 이였다.
주무기는 슬라이더와 컷패스트볼, 그리고 커브였다. 올해 센트럴리그에서 왼손 투수로는 최다승 투수. 3차례 완투와 2번의 완봉승을 따냈다.
느린 공이지만 칼날 제구. 유희관(두산)이 떠오를 만한 유형이었다. 이날 SBS스포츠서 중계 마이크를 잡은 이승엽 해설위원은 "다구치의 슬라이더는 두 종류로 종과 횡으로 떨어진다. 결코 쉽게 볼 투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만전서 130km 후반대 속구의 천관위에게 고전한 타선이기에 염려가 뒤따랐다.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됐다. 한국은 이날 다구치 상대로 단 4차례 출루에 그쳤다. 시작은 좋았다. 1회 선두 박민우가 내리 5개의 파울을 만드는 등 10구 승부로 다구치를 괴롭혔다. 결과는 투수 땅볼이었지만 집념 자체로 박수받을 장면이었다. 후속 이정후가 몸 맞는 공으로 살아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구자욱과 김하성이 연이어 범타로 물러났다.
이때부터 다구치의 쇼타임이었다. 다구치는 2회와 3회를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4회 2사 후 김하성에게 2루타를 맞으며 흔들리는 듯했지만 김성욱을 뜬공으로 처리하며 이닝 종료했다.
다구치는 5회 이날 경기 첫 위기를 내줬다. 2사 후 류지혁과 한승택의 연속 안타로 1·3루, 그러나 박민우가 2루 땅볼로 물러나며 아쉬움을 삼켰다. 이후 7회까지 마운드에 올라 무실점. 그야말로 원맨쇼였다.
2015 프리미어12에서 오타니 쇼헤이에게 철저히 묶였던 대표팀이다. 일본에는 또 다른 에이스가 줄줄이 알을 깨고 나오고 있다. /ing@osen.co.kr
[사진] 도쿄(일본)=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