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멀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을 내다보고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만 24세 이하 혹은 입단 3년 이내 선수들) 선수단을 구성했다. 선동렬(55) 대표 팀 감독이 일본이나 대만과는 달리 굳이 와일드카드 3장(25세 이상 오버 에이지)을 쓰지 않고 젊은 선수들로만 팀을 꾸린 것은 그 같은 ‘원려(遠慮)’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싹수가 보이는 선수들에게 보다 많은 경험을 쌓게 해 주겠다는 심산이었다.
이런 대회를 통해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이 시야를 넓히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축적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결과는, 기대와는 달리 한국은 17일 도쿄돔에서 끝난 대회 마지막 날 우승 결정전에서 일본에 완패했다. 단순한 결과보다는 그 내용이 너무 부실해 명색이 미래 유망주라는 우리 선수들의 낯부끄러운 현주소만 확인한 꼴이 됐다.
이 시점에서 도대체 우리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본조차 제대로 안 돼 있는 선수들이 관전자들로 하여금 속 터지게 만들었을 뿐이다. 투수는 스트라이크(특히 초구)를 던지지 못해 볼넷을 남발(결승전만 8개)했고 볼카운트가 불리해지면 가운데 평범한, 아주 치기 좋은 공을 던지기에 급급했다. 김윤동(24·KIA 타이거즈), 심재민(23·kt 위즈), 박세웅(22·롯데 자이언츠) 등 올해 국내 무대에서 나름대로 성장했다고 평가받았던 투수들이 스트라이크 던지는 법을 잊은 것 같은 투구로 코칭스태프의 애를 태웠다.
선동렬 감독이 결승전 뒤에 “투수들이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모른다"고 한탄 섞인 푸념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투수들이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니 계속 경기를 어렵게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타자들 역시 제구력이 정교한 일본 투수들에게 결승전에서는 거의 맥을 추지 못했다. 일본투수들은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잡고 한국 타자들이 2구째 유인구에 헛손질을 하면 여유롭게 삼진이나 범타로 처리했다. 2014년 이후 해마다 타율 3할 타자가 30명을 넘나들고 있지만, 막상 이런 국제대회를 치러본 결과 안방에서만 활갯짓한 셈이다.
물론 일부 가능성을 보인 선수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타자는 김하성(24)과 이정후(19·이상 넥센 히어로즈), 투수는 장현식(22·NC 다이노스)과 임기영(24·KIA 타이거즈)이 그런대로 제 구실을 해냈다. 장현식과 임기영이 보여준 ‘배짱 투구’를 다른 투수들이 본받을 필요가 있다. 해외 유턴파 장필준(29·북일고-상무-LA 에인절스-2015년 삼성 라이온즈)은 나이로는 그리 젊다고 할 수 없지만, 국내 구단 입단 3년차로 투수진의 맏형 노릇을 해내며 국가대표 마무리 투수로서 재발견을 한 경우가 되겠다.
이번 대회에 나온 일본 투수들은 대부분(12명 중 9명) 공 빠르기가 시속 150km를 넘는데 반해 한국 투수들은 한두 명을 제외하곤 꾐수에 의존하는 투구를 했다. ‘파워피처’의 부재는 한국 야구, 한국 프로야구 투수진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단적인 증거다.
승부에 목을 맨 아마지도자들로부터 어린 선수들에게 잔재주 위주로 이른바 도망가는 피칭을 가르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는 이유다. 어렸을 적부터 정면 대결이 아닌 어설픈 기교를 익혀 타자를 상대하다보니 그런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 투수들이 프로무대에 와서도 제 버릇을 버리지 못해 경기 시간만 질질 늘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KBO 양해영 사무총장은 “우리 선수들이 많을 걸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맞붙어보고 벽이 높다는 걸 실감했을 것이다. 옛날에 한-일 슈퍼게임(1991, 95, 99년)을 통해서 우리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성장했듯이 이런 기회를 통해 선수들이 많이 배워야 한다는 취지에서 대회를 성사시켰다”면서 “아직도 우리는 A팀 한 팀이 한게임 정도는 (일본과) 대등하게 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저변이 약하다. 일본(투수들)은 활시위를 한껏 당겼다가 놓는 식인데 비해 우리 투수들은 반쯤 당겼다가 던지는 식”이라고 비유했다.
제 공에 대한 확신이 없어 배짱 있는 투구를 하지 못하고 소심증에 걸린 것 같은 투구를 해댔다. 국내리그에서는 그런대로 통했지만 결국 우물 안 개구리 격이었다.
일본은 이미 도쿄올림픽을 향해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특정인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기본부터 착실하게 차근차근 가르치지 않으면 이 같은 낭패를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마냥 비관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참에 제대로 고치지 않고 넘어간다면 앞날은 어둡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