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봉한 영화 ‘미옥’(감독 이안규)과 ‘악녀’(감독 정병길)가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데 실패했다. 21일 영진위 통합전산망 집계를 보면 이달 9일 개봉한 ‘미옥’은 어제(20일)까지 23만 6926명의 관객을 기록했다. 할리우드 영화 및 개봉을 앞둔 한국 영화들의 진입으로 인해 손익분기점인 200만 돌파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6월 개봉한 ‘악녀’는 190만이 손익분기점이었는데 총 120만 8081명의 누적 관객들을 모으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고 곧바로 여성영화의 실패로 분류하는 것은 오산이다. 한국 여성 액션 영화의 진일보를 일구어낸 ‘미옥’과 ‘악녀’의 매혹적인 액션은 한계를 뛰어 넘는 도전을 해낸 배우들의 끈기와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성 영화는 멜로드라마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말해서 멜로드라마가 곧바로 여성 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멜로드라마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여성적 시각을 중심으로 다루긴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여성 영화는 여성적인 멜로드라마와는 차이를 갖는다.
여성 영화는 여성 스스로가 여성에 관해 말을 건네는 영화로 이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 영화는 여성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문제를 여성적인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옥’과 ‘악녀’ 모두 여성 영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관객수로 수치화하는 일이 영화 성공의 지표로 여기는 요즘 시대에 두 작품의 스코어가 턱없이 모자랐겠지만 ‘미옥’은 제50회 시체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고, ‘악녀’는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았다. 분명 무시하지 못할 성과를 올린 셈이다.
남성 중심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여자가 살아남기 위해 결국 무엇을 택하게 되는지를 보여줬다. 모르긴 몰라도 이 영화들을 좋아하는 남성들도 꽤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여주인공으로서 전면에 선 김혜수와 김옥빈의 도전은 일등공신이다. 남자들의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며 호쾌하게 사는 걸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기도 한다. 각본의 힘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 같은 영화에서 배우들이 제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것은 분명 환호 받을 일이다. 더욱이 어느 남자 배우들과 비교해도 더욱 두 배우의 호연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두 영화의 관객 수 미달로 앞으로 여성 액션 영화를 연출한다는 것은 아주 희귀한 일이 될 듯하다. 장르를 불문하고 여성 영화를 만들 기회가 적은 판국에 일반적으로 남성 액션 영화가 더 적합할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남성적인 장르를 세밀하고 차분한 손길로 보여줬기에 여배우도 남배우 못지않은 액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참담한 결과로 끝이 나 안타까움과 시련을 안겨주긴 했지만 그냥 묻히기엔 아까운 감이 없지 않다./purplish@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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