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한국이 오랜만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대표팀은 26일 고양체육관에서 개최된 ‘2019 중국농구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2차전에서 중국에 81-92로 아쉽게 무릎을 꿇었다. 2연승의 중국이 A조 1위로 올라서고 한국(1승1패, 승점 3점)은 2위를 기록했다.
한국남자대표팀이 국제농구연맹(FIBA) 주관으로 국내서 개최된 경기에 출전한 것은 무려 20년 만의 일이다. 최근에는 지난 1997년 FIBA의 개최로 잠실체육관에서 열렸던 ABC(아시아 바스켓볼 챔피언십) 올스타전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한국대표팀이 ABC올스타와 맞붙었다. 현주엽이 하프타임 덩크슛 콘테스트에서 백보드를 박살냈던 바로 그 경기다. 서장훈이 덩크슛 네 방을 터트렸다. 문경은이 띄워준 공을 전희철이 앨리웁 덩크슛으로 연결했다. 한국은 아시아올스타마저 제압했다. 90년대 한국농구의 최전성기, 최고의 스타들이 모두 모였던 대회였다.
이후 한국남자농구는 오랜 침체기를 겪었다. 올림픽 출전도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어졌다. 국내서 뜨거웠던 농구의 인기도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이후 한국은 국제대회서 처참한 성적과 맞물려 농구인기까지 급격히 하락해 이중고를 겪었다. 1997년 KBL이 첫 출범했지만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선수의 득세에 국내스타들이 전멸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한국남자농구가 FIBA주관 공식대회를 안방에서 열기까지 무려 2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간 2014 뉴질랜드와 평가전, 2016 튀니지와 평가전 등이 잠실에서 개최됐으나 농구협회 주관 연습경기에 불과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은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주관이었다. FIBA의 감독 하에 국내서 경기가 치러진 것은 2007년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이 마지막이었다.
FIBA는 올림픽으로 가는 관문인 농구월드컵의 출전권을 홈&어웨이 제도를 통해 주도록 제도를 바꿨다. 이에 따라 세계농구의 변방으로 여겨지는 한국에서도 정기적으로 A매치가 열리게 됐다. 강제적인 문호개방이지만 어쨌든 한국농구에게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KBL 역시 프로리그를 잠시 중단하면서까지 농구인기 부활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번에 농구가 흥행하지 못하면 다 같이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농구협회 관계자는 “A매치 홈&어웨이 제도를 흥행시키기 위해 부족하지만 많은 노력을 했다. FIBA에서도 오랜만에 한국에서의 A매치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전 성공여부가 한국농구의 흥행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다행히 이날 고양체육관에는 4376명의 유료관중이 입장했다. 1,2층 좌석은 이미 예매를 통해 매진된 상태였다. 3층 관중석도 3/4 정도가 들어찼다. 일반 관중에게 공개된 좌석은 대부분 팔린 셈이었다. 중국전 입장권은 프로농구 경기의 두 배가량 비쌌다. 1층 테이블석은 5만 원이었다. 가장 낮은 3층 일반석도 가격이 1만 5천 원으로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3층도 667석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농구팬들을 대상으로 한 공식용품판매도 성공적이었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대표팀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 타월, 열쇠고리, 배지, 핸드폰케이스, 양말, 후드티셔츠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했다. 경기시작 두 시간 전부터 팬들이 줄을 서서 구매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시중 비슷한 제품보다 가격대가 높았음에도 제품을 구매하려는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대표팀 선수들의 이름과 번호를 즉석에서 찍어주는 유니폼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준비했던 120벌이 대부분 소진됐다.
중국전 막판 한국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3점슛을 던졌다. 경기장 내에 있는 팬들이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한국을 응원했다. 중국전 가장 큰 소득은 농구팬들이 국가대표팀을 계기로 하나로 뭉쳤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한국이 아시아의 중요한 농구시장으로서 잠재력과 구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고양=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