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는 끝났다. 항로도 컴퓨터에 입력했다. 엔진도 서서히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은 “아직 이륙하지 못했다”고 했다. 기장이 없어서다. 머리를 비우기 위해 잠시 조종석을 이탈한 세터 한선수(32)의 복귀가 대한항공 이륙의 마지막 숙제다.
시즌 초반 예상보다 경기력이 저조했던 대한항공은 최근 2연승을 거두고 반등에 성공했다. 24일 우리카드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0으로 이겼고, 28일 현대캐피탈과의 홈경기에서는 풀세트 접전 끝에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일단 팀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완벽한 경기력은 아니다.
사실 두 경기는 외국인 선수 미차 가스파리니가 팀을 끌고 간 경기였다. 24일 우리카드전에서는 1세트만에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는 진기록을 세우며 기선 제압 선봉장으로 나섰다. 28일 현대캐피탈전에서도 고군분투하며 36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주전 세터 한선수는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대신 지난 우리카드전부터는 황승빈(25)이 팀을 지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한선수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결국 고육지책에 가깝다. 가스파리니와의 호흡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비시즌 동안 팀 공격에 속도를 불어넣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자연히 한선수의 토스 스타일도 바뀌었다. 그런데 팀 합류가 늦은 가스파리니만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 선수마다 다른 토스를 쏴준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한선수도 혼란이 왔다는 게 박 감독의 생각이다.
이에 비해 황승빈은 좀 더 가스파리니의 입맛에 맞는 높은 토스를 구사한다. 가스파리니와 잘 맞는다. 가스파리니가 최근 두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다. 그러나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선수다. 다른 공격수들을 전체적으로 살리는 능력은 한선수가 더 낫다는 게 구단 내부의 판단이다. 결국은 한선수와 가스파리니가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언젠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박 감독도 이런 그림이 팀에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일단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훈련을 통해 가스파리니가 이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 시행착오가 빨리 끝날수록 대한항공의 순항고도 진입은 빨라진다. 조금씩 해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