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주인공 김제혁(박해수)이 회를 거듭할수록 몰입도를 더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그와 언뜻 겹치지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신원호 PD의 전작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최택(박보검)이다.
배우로만 봤을 때 외모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박해수가 남성적인 매력이 강한 선 굵은 형이라면, 박보검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이른바 '멍뭉미' 가득한 남자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내면적 면모에 공통점이 있다.
일단 두 캐릭터 모두 느릿하고 침착하며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김제혁은 쉼표 많은 말투로 자신의 감정 상태를 비교적 담백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읽을 수 없어 때로는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와 엉뚱함을 자아낸다. 구치소로 가면서 가장 큰 걱정이 집의 창문을 제대로 닫지 못하고, 보일러도 끄지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하나의 웃음포인트가 된다.
이는 최택 역시 마찬가지였다. 느릿하게 '덕선아~'를 부르는 최택 역시 감정의 대부분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기에 가끔 찰나의 눈빛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감정이 시청자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던 바다.
두 캐릭터 모두 분야는 다르지만 스포츠 세계 정상의 자리에 있다는 것도 같다. 김제혁은 야구선수로, 최택은 바둑기사로 그 세계를 정평한 슈퍼스타. 겉모습과는 다른 집념의 승부사라는 것도. 김제혁은 어깨부상을 당하면서도 노력 하나로 정상의 자리에 올라왔다. 전날 무슨 일이 있건 새벽에 연습을 하고 다시 잠을 청할 정도로 엄청난 노력파인 그는 야구를 위해 술과 담배 같은 것들은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목표에 몰두했다.
과거의 최택 역시 다소 약한 몸에도 어릴 때부터 한 자리에 앉아 밤새 바둑 연습을 해 주변의 걱정을 달고 살 정도였다. 그의 성공은 혼자만의 세계에 집념으로 파고든 피땀눈물의 결과였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일상생활에서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할 것처럼 구멍이 많은 허당이라는 것도 비슷하다.
하지만 당췌 속을 모르겠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제혁의 친구 이준호(정경호)는 곧 독방생활을 해야할지도 모른다는 주변의 걱정에 "제혁 선수 성격 잣같다. 한 번 돌면 장난 아니다. 오죽하면 목동 돌아이로 불리겠냐"고 말해 의아함을 자아냈다. 실제 그날 밤 제혁은 한 방을 쓰던 건달을 힘으로 제압했다.
최택 역시 속이 읽히지 않는 인물이었는데 이는 덕선(혜리)을 향한 마음마저도 그랬다. 그렇기에 가끔 찰나의 눈빛에서 드러나던 강렬함이 시청자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던 바다. 겉은 잔잔하지만 내면은 뜨거운, 조용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마냥 단단해보이는 두 사람. 하지만 정상에 서기까지 겪은 남모를 고충이 주변인들과 시청자들을 아프게 한다. 지난 달 30일 방송에서는 김제혁이 돌연 야구 은퇴를 선언한 충격적인 엔딩을 그려졌다. 이날 방송 말 교도소에서 들어 오기 전,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던 김제혁이 가족들과 구단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돌연 은퇴소식을 전해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준호에게 "나 이제 노력 그만 할래. 노력하는 거 지겹다. 최선을 다하는 것도 지겨워. 노력과 끈기의 상징, 힘들어서 이제 못하겠다"라고 전했다.
과거 택은 덕선에게 경기를 앞두고 "나 져도 되지?"고 물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경기에서 지는 것', 혹은 '포기하는 것'의 의미를 다른 사람은 차마 헤아릴 수 없는 최택과 김제혁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깊은 울림과 공감을 안긴다. 결국은 '남편'이라는 최고 반전의 주인공이 됐던 최택. '감빵생활'의 김제혁에게는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까. /nyc@osen.co.kr
[사진] tvN,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