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 강지광, 만화야구 그릴 양면의 도화지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12.02 14: 22

“글쎄요, 투수라고 하기는 좀 어려웠어요. 그저 조금 강한 공을 던지는 사람이었다고나 할까요. ‘진짜 투수다’라는 식의 깊은 생각은 한 적이 없었어요”
인천고 시절 강지광(27·SK)은 투수와 야수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망주였다. 마운드에서는 강속구를 던졌고, 타석에서는 장타를 펑펑 때렸다. 2009년 LG의 2차 3라운드(전체 20순위) 지명을 받을 때도 팀은 그를 투수로 생각했다. 투수로서 발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입단하자마자 팔꿈치인대접합수술(토미존 서저리)을 받았다. 이 여파 탓에 야수로 전향했다. 지금까지도 야수로 뛰었다. ‘투수 강지광’은 사라진 듯 했다.
그러나 SK는 다시 ‘투수 강지광’을 주목했다. LG 프런트 재직 시절 강지광을 드래프트했던 염경엽 SK 단장은 넥센 감독 시절 강지광에게 공을 던져보도록 했다. 지금 SK 투수코치이자 당시 넥센 투수코치였던 손혁 코치도 강지광의 투구를 지켜봤다. 결론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수술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 빠르고 묵직한 공을 던졌다. 강지광은 “내가 생각했을 때는 별로였다”고 웃으면서도 “당시 감독님의 의중을 어렴풋이 알게 된 계기였다”고 떠올린다.

비록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고교 시절의 모습과 이 테스트는 올해 SK의 2차 드래프트 전략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SK는 지난 11월 열릴 2차 드래프트에서 강지광을 1라운드에서 지명했다. 염 단장은 일찌감치 강지광을 1라운드 지명자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른 팀이 뽑을까봐 노심초사했을 정도다. 하지만 처음부터 야수로 쓸 생각은 없었다. 투수로 지명한다는 방침이었다.
염 단장은 “지금은 부상 여파에서 완전히 회복됐다. 아주 묵직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다. 투수로 전향에 성공한다면 140㎞대 후반의 매력적인 공을 던질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여기에 워낙 심리적으로 담대한 선수다.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할 만한 성격이다. 잘 된다면 차세대 마무리감을 하나 얻는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2차 드래프트에서 예정대로 강지광을 지명한 염 단장의 얼굴은 기대감으로 상기되어 있었다.
강지광도 지명 후 염 단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이러한 구단의 생각을 전달받았다. 다소 당황스러울 법도 했지만, 지금은 다시 투수로 태어나는 첫 걸음을 떼는 과정이다. 야수의 몸과 투수의 몸은 완전히 다르다. 쓰는 근육부터가 다르고 가동범위도 다르다. 그래서 천천히 몸부터 만들고 있다. 지명 직후부터 비활동기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트레이닝 파트에서 사실상 맨투맨으로 강지광을 지도했고, 비활동기간에 할 운동 프로그램까지 꼼꼼하게 만들어 전달했다.
어색하지만 부딪혀본다는 각오다.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투수로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강지광은 “투수로서의 강지광은 빠른 공을 던지기는 하지만, 다듬어지지 않고 섬세한 면도 없었던 선수였다”고 담담하게 말한 뒤 “야수로 뛰면서 매커닉이나 밸런스가 야수 쪽으로 많이 치우쳐 있는 상태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하다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폼도 잡힐 것 같다. 손혁 코치님께서 잘 봐주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강지광의 꿈은 단순히 투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염경엽 단장도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염 단장은 강지광에게 “투수 전향에 대해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말라. 투수로 훈련을 하되, 하고 싶으면 타격 쪽에서도 훈련을 해 부족한 점을 채워넣어도 된다”고 격려했다. 굳이 한계를 긋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강지광도 “면담에서 감동을 많이 받았다. 빛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신 분이다. 투수로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급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강지광은 “야구선수로서 야구장에 많이 서는 것이 목표다. 야구인생을 짧게 끝내고 싶지는 않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1군에도 서고 싶지만, SK에는 좋은 투수들이 많다. 많이 보고 배우고 실전에서 부족한 점을 느끼고 얻어야 할 것 같다. 단기간의 목표보다는 길게 보며 집중하면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롱런을 위해 더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지겠다는 생각이다.
이적 전 타격에서 뭔가 감을 잡았던 강지광이다. 이에 “등판하지 않는 날은 대타나 대주자로 뛰어도 될 것 같다”는 질문에 강지광은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아무래도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을 조심스러워하는 속내가 읽힌다. 투수로서 확실히 자리를 잡는 것이 우선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지광은 “불가능하다고 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야구를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투수 전향에 전념하겠지만, 그 단계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더 큰 꿈을 꾸겠다는 의지는 가지고 있다. 시작부터 마냥 “안 된다”라고 할 필요는 없다. 강지광이 자신이 가진 도화지의 양쪽 모두를 채워갈지 주목된다. 2018년은 그 출발점이며 남다른 과정은 주목해서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skullboy@osen.co.kr
[사진] 넥센 시절 타자로 활약한 강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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