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조 밴드 이상의 날개가 최근 연이어 싱글 2장을 냈다. ‘인간실격’과 ‘향’이다. 두 곡 모두 음악적 깊이와 사운드스케이프의 농밀함이 대단하다. 특히 8분51초짜리 ‘인간실격’은 올해 나온 인디 싱글 중 톱이라 할 만하다. 보컬 문명진의 역량도 쉽게 파악되는데, “잘 부르지만 안 부르는” 것임이 분명하다. 역시, 1집 ‘의식의 흐름’으로 올 2월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모던록 음반상을 받은 밴드답다.
이상의 날개를 [3시의 인디살롱]에서 만났다. 멤버는 기타와 보컬의 문명진(위 사진 가운데), 기타의 김태봉, 베이스의 하태진(오른쪽), 드럼의 이충훈(왼쪽)이지만 김태봉은 개인 사정상 인터뷰에 불참했다. 인터뷰는 이들의 음반을 유통하는 미러볼뮤직 서울 서교동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이상의 날개는 2011년 문정민이 주축이 돼 결성됐으며, 앞서 문정민은 김태봉과 2인조 프로젝트팀 ‘Detuned Radio’로 4년여 활동했다.
#. 이상의 날개 디스코그래피
= 2011년 3월 EP 상실의 시대 : 메멘토, 섬, 끝, 상실의 시대(7분1초), 향기
= 2013년 1월 싱글 날개 : 날개(5분15초), 상실의 시대(7분29초)
= 2013년 6월 EP 너와 나의 이야기 : 프롤로그, 글루미블루, 날개(4분49초), 아침, 잿빛비, 해질녘, 놀이터, 저녁, 평행선, 달빛, 나너우리, 에필로그
= 2014년 2월 싱글 망각 : 망각
= 2016년 9월 1집 의식의 흐름 : 의식의 흐름, 붉은하늘, 코스모스, 신세계, 눈, 날개(5분15초), 망각, 오월, 상실의 시대(7분29초), 검은바다, 공
= 2017년 11월16일 싱글 인간실격 : 인간실격
= 2017년 11월29일 싱글 향 : 향
= 반갑다. ‘인간실격’, 올해 들은 최고의 음반 중 하나였다. 우선 ‘팩트’ 확인부터 하자. 이상의 날개는 지금 5기 체제다. 2011년 데뷔 EP ‘상실의 시대’를 냈을 때 멤버는 문정민과 김태봉, 전성희(키보드), 김동원(드럼)이었고 이 때가 1기다.
(문정민) “김태봉과 ‘Detuned Radio’를 하면서 ‘상실의 시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김태봉은 스무살 때 나우누리 동아리에서 만난, 동갑에 같은 음악 취향을 가진 친구다. 그런데 아무래도 영어팀명이 어색해서 한글 이름인 ‘이상의 날개’로 변경하고 피아노 치던 친구(전성희)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는 형님이던 김동원이 들어오면서 밴드로 활동하자고 제의했다. 이렇게 해서 4인조 이상의 날개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베이스는 세션이었다.”
= 2013년 싱글 ‘날개’와 EP ‘너와 나의 이야기’는 2기 체제에서 나왔다. 문정민 김태봉 전성희, 그리고 김은택(베이스) 김진원(드럼)이다.
(문정민) “전성희는 활동은 안했고 음반 녹음에만 참여했다. 김은택과 김진원은 (뮤지션 커뮤니티인) 뮬(mule)에 공고를 내서 구했다.”
= 2014년 싱글 ‘망각’은 3기 멤버들이 냈다. 문정민 김진원, 김동원(기타) 하태진(베이스)이다. 김태봉이 나가고, 김동원이 악기를 바꿔 다시 들어온 것인가.
(문정민) “하하. 아니다. 동명이인이다. 오디션을 보러 왔는데 이름이 (1기 때 드럼을 치던) 김동원이어서 저희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 베이스 공석이 생기자 드러머 김진원이 데리고 온 고등학교 친구가 바로 하태진이었다.”
(하태진) "결국 그 친구는 나가고 내가 계속 있게 됐다."
= 2016년 1집 ‘의식의 흐름’ 때는 김진원이 나가고 새 드러머로 이충훈이 들어온 4기(문정민 김동원 하태진 이충훈)다.
(문정민) “이충훈은 뮬에서 봤는데 음악이 괜찮더라. 이충훈이 합류할 때는 이미 1집 녹음을 3,4개월 정도 진행한 때라 드럼을 다 뒤집어 엎고 다시 녹음했다. 그래서 앨범 작업이 오래 걸렸다.”(이충훈은 밴드 사일런트 아이에서 2011년부터 활동해오다 2015년 여름 이상의 날개에 합류했다.)
= 그러다 올 초 옛 멤버 김태봉이 재합류해 5기(문정민 김태봉 하태진 이충훈)가 됐다.
(문정민) “기타를 치던 김동원은 직장과 밴드를 같이 하기가 여의치 않아 그만 뒀다. 그래서 김태봉에게 다시 연락했다. 사실 김태봉은 직장 때문에 오늘 인터뷰에도 못왔지만, 2013년 ‘너와 나의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너무 힘들어했다. 다들 지치고 밴드에 대해 회의감이 들 때라 ‘몸과 마음 다 힘들어 쉬겠다’고 팀을 떠났었다.”(현재 문정민은 대학 외래교수로, 김태봉은 자동차회사에서 디자인설계쪽으로, 하태진은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이충훈은 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 2013년부터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오고 있는 김보솔은 누구인가.
(문정민) “친동생이 미디어아트를 전공하는데, 그 동생이 학교에 특강을 갔다가 만난 학교 후배다. 그 친구가 이상의 날개 공연을 할 때마다 공연용 영상을 만들어줬는데, 개성이 마음에 들어 뮤비를 제안했다. ‘상실의 시대’ ‘붉은하늘’ ‘의식의 흐름’ ‘인간실격’ 모두 그 친구가 만들었다. ‘날개’도 제작중인데 본인 스스로가 제대로 만들고 싶다고 해서 조금 늦어지고 있다.”
= 12월에 나오는 ‘향’ 뮤비는 다른 사람이 제작하나?
(문정민) “(이상의 날개 소속사인) 석기시대레코드 뮤비팀이 맡았다. 일반 뮤비처럼 배우들이 연기한다. 사람이 등장하는 것은 이상의 날개 뮤비로는 처음이다.”
= 석기시대에는 언제 합류하게 됐나.
(문정민) “정규앨범을 준비중이던 2014년 가을에 대표님이 연락주셔서 합류했다. 그해 8월 네이버 온스테이지에 올린 영상을 보시고 마음에 들으셨던 것 같다.”
= ‘인간실격’은 올해 들은 최고의 곡이다. 곡 설명을 부탁드린다.(이 곡은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동명소설을 모티프로 삼았다.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서 자격을 잃고 삶의 밑바닥을 기며 파멸해가는 ‘나’를 노래했다)
#. ‘인간실격’ 가사 = 처음부터 모든 건 이미 정해져 있었지 순진한 미소에 감춰진 나의 그림자 거짓의 삶 어둠보다 더 깊은 늪 속에 빠져들었지 정신과 육체에 스미는 나의 그림자 파멸의 길로 절망의 절벽 끝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비웃고 있는 또 다른 나의 검은 모습이 사라지질 않아 삶의 방향도 삶의 목표도 삶의 이유도 잃은 채 하루하루를 사는 나 살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박탈된 삶 속에 그윽한 죽음의 향기 인간실격자 절망의 절벽 끝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비웃고 있는 또 다른 나의 검은 모습이 사라지질 않아 삶의 방향도 삶의 목표도 삶의 이유도 잃은 채 하루하루를 사는 나 절망의 절벽 끝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비웃고 있는 또 다른 나의 검은 모습이 사라지질 않아 삶의 방향도 삶의 목표도 삶의 이유도 잃은 채 하루하루를 사는 나
(문정민) “정규 때는 감기가 갈려 어려웠었는데 ‘인간실격’은 보컬을 쉽게 녹음했다. 녹음은 플랫폼창동61에서 했다.”
= 잘 하는 보컬인데 좀체 들려주질 않는다.
(문정민) “익숙하지 않은 걸 찾다보니까 보컬을 (되도록) 없애게 됐다. 버스(verse) 나오고 후렴구 나오고, 이런 형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태진) “이 곡은 제가 제안했다. ‘상실의 시대’도 나왔으니 좀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싶었다.”
(문정민) “‘상실의 시대’를 쓰고 나서 허무주의에 빠진 시기가 있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조, 이런 것. 그런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20대들도 많이 공감할 것으로 본다. 소설이 워낙 유명해서 읽어봤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과 비슷했다. ‘나’라는 존재의 방황. 앞으로도 이런 내용을 많이 다루고 싶다. ‘나’라는 자아에 대한 관심이 많다.”
= 왜 싱글로 나오게 됐나.
(문정민) “원래는 2014년에 만들었는데 나와 (하)태진이는 마음에 들어했지만, 당시 다른 멤버들이 ‘분위기가 너무 다크하고 무겁다’고 해서 빛을 못봤다. 그러다 (이)충훈이가 들어와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하지만 분량이 크고 하니까 정규에는 못넣고 이번에 싱글로 나오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음원이다. (6분50초 무렵) 이 부분이 이상의 날개만의 색채가 들어간 간주 파트다. 이게 포인트다. 정신분열이 일어난 듯한, 정신이 혼미해진 듯한 순간을 표현했다. 스네어로 쪼개주는 드럼이 긴장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이충훈) “합주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 ‘인간실격’이 나오고 나서 2주일도 안돼 새 싱글 ‘향’이 나왔다. 이렇게 붙어서 나온 이유가 있나.
(문정민) “8월에 단독공연하느라 싱글을 낼 시간이 없었다. 단공 후 두 곡을 동시에 작업해서 발매만 나눠서 하게 됐다. 처음에는 ‘인간실격’을 타이틀로, ‘향’을 서브로 해서 한 싱글에 담으려 했는데 ‘향’이 너무 잘 나왔다.”
= ‘향’은 세월호에서 시작해 우리 곁은 떠난 모든 이들을 추모하는 곡이라고 알고 있다.
(문정민) “이상의 날개의 이전 음악들은 주로 ‘나’ 자신에 대한, 자아성찰의 노래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망각’이나 ‘오월’처럼 ‘우리’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됐다. ‘향’은 처음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해 쓰려 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사람이 죽어 떠나간 것은 다 똑같은데 어떤 경우는 조롱하고 어떤 경우는 애도하고 평가가 다 다르더라. 이유를 불문하고 이 세상 떠난 사람들을 다 기억하자, 구분짓지도 말자, 이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죽은 이들을 애도하는 텐도 아라타 작가의 소설 ‘애도하는 사람’에 크게 공감했다. 그 소설 주인공이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들을 애도하냐는 질문에) 그런다. ‘나도 잘 모른다. 단지 개인으로서 애도할 뿐이다’.”
(하태진) “평소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타인의 죽음, 내 앞에 닥칠 죽음. 사람이 죽은 장례식장에서 가서 다들 자기자랑만 하고 술 먹고 깽판이나 치고. 허무하다.”
(문정민) “왜 순수하게 애도할 수는 없을까.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20대 이전에 상주를 2번이나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는 사람 장례식에 가도 남다르게 느껴지는 게 있다. 이런 걸 표현하고 싶었다. 세월호도 그렇고, 비극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 못한다.”
= 이 곡에는 아예 가사가 없다.
(문정민) “처음에는 짧은 가사가 있었는데, 오히려 의미가 전달이 안돼 생략했다. 사실 ‘향’도 가제였다. 먼저 정했던 제목은 ‘산자의 위로’였다. 죽은 자들이 뭘 알까, (살아남은) 우리들끼리 위로하고 위로받으려 하는 게 아니냐, 이런 맥락이다. 떠나간 사람은 잊혀지고, 남은 사람들은 편해지려 하고. 곡을 듣다보니 절이나 교회 같은 조용한 곳에서 향을 피운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향’으로 정했다.”
= 1집 마지막 트랙으로 실렸던 ‘공’에서는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녹음됐는데 갑자기 그 대목에서 울컥하더라. 1집에서는 이 ‘공’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가장 궁금하다.
(문정민)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마지막에 울었다. 시간이 나보다 빨리 가서 할머니가 된 딸을 만나는 그 장면. ‘공’은 무조건 마지막 트랙에 싣고 싶었다. 끝은 또다른 시작이며, 만남은 헤어짐으로 이어진다는 순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기타 리프 역시 ‘인터스텔라’처럼 계속해서 돌고 돈다. 아이들 효과음을 넣은 것은 ‘(우리들의) 유년시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런 의미다. 울컥 하셨다면 제대로 들으신 것이다. 처음에는 가제로 ‘인터스텔라’를 붙였지만 이후 빌 공, 숫자 영, 발로 차는 공, 원불교의 원, 이런 중의적 의미를 담아 ‘공’이라고 짓게 됐다.”
= 2곡 싱글이 나왔으니 앞으로도 계속 싱글을 낼 계획인가.
(문정민) “‘인간실격’이나 ‘향’과 밸런스, 무게중심을 맞출 수 있는 노래를 작업 중이다.”
(하태진) “발랄하고 산뜻한 노래가 될 것이다.”
(문정민) “천천히 잘 해보려고 한다. 1집 ‘의식의 흐름’ 앨범도 녹음만 1년6개월이나 했다. 불안감이 많았지만, 상도 받았고 피드백도 좋았다. 느리더라도 잘 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음악이) 로큰롤 음악도 아니고, 공연에서 뛰는 음악도 아니고, 하나의 이야기 같은 음악이니까. 저희도 점점 아저씨들이 되어가고 있다. 이럴 바에는 아예 천천히, 노래가 갖춰지면 그 때 앨범을 내자, 느리지만 꾸준하게 내자, 이런 생각이다. 초심과 저희만의 색채를 잃지 않고 싶다.”
/ kimkwmy@naver.com
사진=지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