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21·흥국생명)은 여자부를 대표하는 토종 거포다. 여기에 수비에서도 공헌도가 크다. 다른 선수들과는 차별화되는 이재영의 매력이자 커다란 가치다.
올 시즌도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분전하고 있다. 이재영은 18일 현재 252점을 올려 리그 전체 6위를 달리고 있다. 국내 선수로는 1위다. 리시브에서도 세트당 3.538개를 기록해 문정원(도로공사·4.125개)에 이어 2위다. 리시브와 디그를 합친 수비 성공에서는 세트당 6.904개로 7위다. 팀의 주 공격수로 이만한 수비 성적을 내는 경우는 드물다.
이재영은 비시즌 동안 허리 부상으로 고전했다. 대표팀 일정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불필요한 논란까지 휘말렸다. 여파는 시즌 초반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1라운드 공격 성공률은 27.86%에 머물렀다. 소속팀 흥국생명도 덩달아 흔들렸다. 다만 2라운드는 40.82%의 성공률을 기록하며 반등했다. 흥국생명은 이재영의 분전과 더불어 외국인 선수 심슨을 크리스티나로 교체하며 경기력이 점차 나아지고 있다.
하지만 불안요소도 있다. 이재영의 과부하 조짐이다. 이재영은 팀 내에서 체력이 가장 좋은 선수로 통한다. 그러나 “확실히 지난 시즌만한 스태미너가 나오지 않는다”고 평가하는 배구계 관계자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아직 시즌이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흥국생명의 고민이 갈수록 커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부상 탓에 시즌을 착실히 준비하지 못한 이재영이다. 경기 체력을 완전히 충전한 채로 시즌에 들어섰다고 볼 수 없다. 여기에 주포 몫을 해야 할 외국인 선수도 물음표다. 심슨은 부상으로 퇴출됐다. 크리스티나의 가세가 반갑지만, 크리스티나도 압도적인 힘과 높이를 앞세운 전형적인 거포라기보다는 코스를 잘 읽고 공을 잘 달래는 유형에 가깝다.
그 가운데 이재영의 의존도는 고공비행이다. 이재영의 올 시즌 팀 내 공격 점유율은 32.6%다. 2015-2016시즌은 28%, 2016-2017시즌은 26.8%로 30%를 넘지 않았다. 리시브 점유율도 마찬가지다. 이재영의 올 시즌 팀 내 리시브 점유율은 42.5%다. 2015-2016시즌 38.5%, 2016-2017시즌 38.9%에 비해 더 올랐다. 공격과 리시브 점유율이 동시에 높아진 구조다. 역사상 최고 레프트로 뽑히는 김연경도 공격 30%, 리시브 40% 이상을 동시에 점유한 적은 없다.
이재영은 수비에도 욕심이 많은 선수다. 공을 받고 때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100%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17일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에서도 이재영 의존도에 대한 명암이 드러났다. 이재영은 이날 팀의 전체 리시브 중 57.69%를 점유하면서도 공격 점유율 또한 36.98%로 팀 내에서 가장 높았다. 1·2세트는 쾌조의 컨디션을 뽐냈지만,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3세트 이후로는 고전했다. 에이스의 발이 무뎌진 흥국생명도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이재영은 능력이 있는 선수다. 팀이 이재영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상황이 썩 호의적이지 않다. 흥국생명은 시즌 초반 부진으로 승점을 많이 까먹었다. 승점 15점으로 리그 5위다. 3위 IBK기업은행(승점 23점)과의 승점차는 8점이다. 당분간은 승리를 위해 전력질주를 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이재영에 대한 의존도는 일정 수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이 약해 날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팀 구조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흥국생명으로서는 당장 승점을 쌓으면서도 주포의 컨디션을 끝까지 이어가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재영으로서도 데뷔 이후 가장 힘겨운 시즌을 슬기롭게 풀어나가야 한다. 흥국생명과 이재영이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