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있었다. 공직 생활을 했던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야구장에 가면서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선수들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보는 게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선수들을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승리를 기원했고, 그토록 갈망했던 응원팀의 우승을 지켜보면서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기뻐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야구계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중책을 맡았다. 이준석(32) 한국독립야구연맹 초대 총재가 그 주인공이다. 눈 내리는 12월의 어느 날 서울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서 이준석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독립야구연맹 초대 총재직을 맡게 된 소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인 야구 단체의 수장을 맡게 돼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제 야구는 어느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른들 생활의 일부이고 아이들의 막연한 꿈이 돼 버렸다. 온 국민의 사랑과 관심 속에 질적·양적 성장을 거듭해 온 야구는 연인원 800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한국독립야구연맹이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든든한 베이스캠프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어릴 적부터 야구에 대해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대구에서 세무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셨던 할아버지와 함께 대구구장을 찾으며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당시 7회 이후 무료입장이 가능했는데 자주 갔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께서 야구 규칙은 잘 모르셨지만 '(이)만수야 (홈런) 날려라' 등 목청 높여 응원하는 낙에 야구장을 자주 가셨다. 개인적으로 류중일 LG 트윈스 감독님과 배영수 선수 등 삼성 출신 야구인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다. 최익성 사무총장님으로부터 (한국독립야구연맹 총재라는) 흥미있는 제의를 받게 됐는데 프로야구와는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다.
-독립야구연맹 총재직을 수락하는 게 절대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병역특례복무를 하면서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공부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자는 취지에서 하게 됐는데 새로운 부분이 보였다. 예를 들어 한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쳤는데 제대로 따라오지 못했다. 알고 보니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학업 활동에 몰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독립야구리그 또한 비슷한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리그 형태를 제대로 갖추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구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후원이 뒷받침돼야 하고 운영 규칙, 상벌 규정 등도 마련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맡은 부분에 대해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 유학생 시절 보스턴 레드삭스가 월드시리즈 우승했었는데 당시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상권 매출도 늘어났다는 기사를 접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스포츠와 비즈니스는 연관돼 있다. 현재로선 독립야구리그의 자생적인 운영이 쉽지 않은 구조지만 기업 후원에 의존하지 않고 연간 입장권 판매 등 작은 수익 사업이라도 해야 한다. 미국 또한 마이너리그 경기를 보기 위해 입장권을 사듯 독립야구리그도 야구 저변 확대를 위한 자생적인 리그 형태를 갖출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독립야구리그 발전을 위해 그리고 싶은 그림이 무엇인가.
▲포털사이트에 보면 국내 야구, 해외 야구 뉴스 카테고리는 있지만 독립야구 뉴스 카테고리는 없다. 독립야구리그 흥행을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리그 형태를 갖추게 된다면 포털사이트와 협의해 독립야구 뉴스 카테고리를 신설하도록 할 생각이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경기 및 개인 기록을 찾아보고 짧은 동영상이라도 봐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이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프로 구단 스카우트들이 현장에 자주 오지 못하더라도 기록과 동영상을 보고 선수들의 기량을 판단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독립야구리그 소속 선수 또는 지도자가 더 나은 리그에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다. 현 상황에서는 KBO리그 은퇴 선수들이 진출할 수 있는 무대가 호주야구리그밖에 없다. 중국 야구 시장이 점차 확대되는 가운데 독립야구리그 선수들이 (중국 야구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루트를 마련하고 싶다. 지금까지 독립야구리그 선수들이 프로 구단에 입단할 때 아무런 조건 없이 보내주는 형태였으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모두 계약 관계로 이뤄져 있다. 독립야구리그 선수들이 중국 야구시장에 진출했을 때 이적료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독립야구리그 선수층이 두터워지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정치인이 독립야구연맹 총재를 맡게 됐다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오래전부터 야구에 관심이 많았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 비야구인이 야구 단체에 와서 일하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본다. 여러 가지 구설도 있었지만 이장석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가 야구계에 처음 등장했을 때 신선한 변화를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존 야구인과는 다른 이력을 가진 인물이 야구 단체에 들어와서 일하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과거 야구 통계 사이트를 만들고 싶었는데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저작권 문제에 부딪혀 접게 됐는데 독립야구리그 관련 기록과 영상을 모든 야구팬들과 공유하고 기록을 재가공할 수 있도록 열어놓을 생각이다.
-독립야구리그 활성화를 위한 인프라도 뒷받침돼야 하는데.
▲미국 유학생 시절 시카고공항을 통해 보스턴으로 가는데 공항 근처에 정식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야구장이 아주 많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서울의 경우 접근성이 많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노원구 상계동에서 잠실야구장까지 가서 야구를 보면 하루를 날리는 셈이다. 그리고 거리뿐만 아니라 비용적인 부분에서도 부담이 될 수 있다. 4인 가족 기준 입장권 가격만 10만 원이 넘는다. 제아무리 야구를 좋아하더라도 비용적인 부담 탓에 야구장을 찾지 못하는 계층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독립야구리그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야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야구와 연관된 다양한 직군이 팬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가령 선수, 심판, 기록원, 장내 아나운서 등 경기를 치르기 위해 다양한 직군이 있는데 방송에서는 선수와 심판만 보일 뿐이다. 구장이 가까이 있으면 자유 학기제 연계 프로그램의 목적으로 학생들이 독립야구리그에 참가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볼 보이를 해볼 수도 있고 일정한 교육 과정을 거쳐 기록원을 맡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린이 기자 활동도 가능하다. 동네에 체험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은 일 아닐까. 고교 야구의 흥행 사례를 본다면 독립야구리그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
-KBO리그에서 육성 기조가 강해지면서 재취업의 문이 좁아졌다. 예년과는 달리 일부 유망주들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독립야구리그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독립야구리그 소속 선수들의 자비 부담을 줄이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은퇴 선수 또는 프로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은 선수들이 일정 수준의 수당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야구를 계속하기 위한 비용이 없다 보니 지장을 받게 된다. 비록 풍족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 만큼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진짜 통 크게 후원하는 기업이 나오지 않는 한 후원을 받기 위해 리그를 활성화하는 게 먼저다. 점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독립야구리그 소속 선수가 프로 구단에 진출했을 때 일정의 이적료를 보상받아야 한다. 그 비용이 결국 독립야구리그 소속 선수들의 육성에 사용된다. 프로 선수들에게 방출이라는 게 큰 충격일 수 있겠지만 독립야구리그를 통해 또 다른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총재 부임 기간 중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앞서 말했듯이 독립야구리그의 체계가 잡히는 게 선결 과제다.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야 리그의 권위가 선다고 본다. 야구는 규격의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데 없다고 없는 대로 해선 안 된다. 공동 트라이아웃 때 선수들의 당일 컨디션으로 기량을 판단하는 건 쉽지 않다. 경기 기록과 동영상 등 자료가 축적될 경우 좋은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