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평가 가치는 돈이다. 선수들에게 연봉은 곧 자존심이다.
한화 외야수 이용규(32)는 지난 20일 9억원에서 5억원이 깎인 4억원에 2018시즌 연봉 계약을 체결했다. FA 권리 신청을 미룬 이용규는 일찌감치 구단에 연봉 대폭 삭감 의지를 전했고, 한화는 KBO리그 역대 최다 5억원 삭감을 제시했다. 이용규도 군말 없이 도장을 찍었다.
역대 KBO리그에서 이용규처럼 대폭 연봉이 깎인 선수들이 상당수 있다. 이용규처럼 자진 삭감 케이스는 아니지만 여러 이유로 칼바람을 맞았다. 대부분 전성기 지난 베테랑 선수들이 말년에 연봉 삭감 시련을 겪어야 했다.
▲ 박명환, 삭감률 90% 역대 최고
이용규에 앞서 역대 최고액 연봉 삭감 선수는 투수 박명환이다. 지난 2011년 LG 소속이었던 박명환은 FA 4년 계약이 끝났지만, 등록 일수를 채우지 못해 연봉 계약을 새로 체결해야 했다. 2010년 연봉 5억원을 받은 박명환은 그러나 2011년 연봉이 50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무려 4억5000만원 삭감. 삭감률 90.0%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다. 이용규의 삭감률 55.6%와 비교해도 큰 차이.
박명환은 거듭된 부상 때문에 FA 계약기간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다. 2007년 첫 해 10승6패 평균자책점 3.19로 분투했지만, 나머지 3년은 24경기 4승10패 평균자책점 6.97로 부진했다. 연봉이 5000만원으로 깎인 박명환은 LG에서 더 이상 기회를 잡지 못한 채 2012년 시즌을 마치고 방출됐다. 그 후 NC로 이적해 2년을 더 뛰었다.
예외적인 케이스로는 투수 손민한이 있다. 손민한은 2011년까지 롯데에서 연봉 6억원을 받았다. 투수 최고액. 그러나 선수협 문제 등으로 롯데에서 방출된 뒤 야구를 1년 쉬었다. 신생팀 NC가 2013년 4월 손민한과 연봉 5000만원에 육성선수 계약을 체결했다. 5억5000만원, 91.7%가 깎인 액수였지만 선수 생활의 기로에 서있던 손민한은 망설임 없이 계약했다. NC에서 3년을 뛰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 김병현 4억원, 마해영 3.5억원 삭감
이용규-박명환에 이어 투수 김병현이 역대 3번째 연봉 삭감폭을 보였다. 2013년 넥센에서 연봉 6억원에 계약했던 김병현은 2014년 2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4억원이 깎인 것이다. 삭감률은 66.7%. 메이저리그 출신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복귀 후 2년간 34경기 8승12패3홀드 평균자책점 5.44에 그쳤다. 연봉이 삭감된 그해 4월 KIA로 트레이드됐다. KIA에서도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지난 시즌을 끝으로 방출됐다.
'왕년의 거포' 마해영도 연봉 삭감폭이 컸다. 2007년 FA 계약 마지막 해 LG에서 4억원을 받은 마해영은 2008년 연봉 5000만원에 친정팀 롯데로 이적했다. 3억5000만원이 깎인 금액으로 삭감률은 87.5%에 달했다. 박명환에 이어 삭감률은 역대 2위. 2007년 1군 11경기 28타수 2안타 타율 7푼1리 1홈런 3타점에 그친 마해영은 LG에서 방출돼 롯데로 떠났지만 32경기 타율 1할5푼3리 11안타 2홈런 8타점을 끝으로 은퇴했다.
▲ 이종범·정민태 등 노장들의 동반 시련
시대를 풍미한 최고 스타선수들도 말년에는 연봉 삭감을 피할 수 없었다. 2008년 시즌을 앞두고 노장 선수들의 연봉이 대폭 깎였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은 만 38세였던 2008년 연봉 2억원에 KIA와 계약했다. 전년도 연봉 5억원에서 무려 3억원이 삭감됐다. 2007년 84경기 타율 1할7푼4리 44안타 1홈런 18타점으로 커리어 최악의 시즌을 보낸 뒤 바로 칼바람을 맞았다. 이듬해 110경기 타율 2할8푼4리 90안타 1홈런 38타점으로 어느 정도 반등에 성공했다.
'빅게임 피처' 정민태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 고생했다. 2007년 현대에서 3억1080만원을 받은 정민태는 2008년 팀 해체와 함께 새로운 길을 찾았다. 당시 그의 나이 만 38세. KIA가 영입 제의를 했지만 연봉은 7000만원. 삭감률 77.5%였다. 2007년 7경기 6패 평균자책점 12.81로 눈에 띄게 하락세를 보인 정민태는 KIA에서도 1경기 등판에 그치며 시즌 도중 은퇴했다.
골든글러브 7회 수상에 빛나는 '명포수' 김동수도 같은 시기에 시련을 맞았다. 김동수는 2007년 현대에서 연봉 3억원을 받았으나 2008년 히어로즈로 팀이 바뀌며 연봉 8000만원에 도장 찍었다. 2억2000만원 삭감. 삭감률 73.3%는 당시 기준 최고였다. 히어로즈가 창단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연봉 삭감으로 몸집 줄이기에 나섰고, 만 40세 최고참 포수 김동수가 희생했다. 같은 시기 외야수 전준호도 2억5000만원에서 1억8000만원이 깎인 7000만원에 도장 찍었다. 삭감률이 72.0%였다.
▲ 봉중근, 신연봉제 직격탄
2012년 LG 투수 봉중근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신연봉제에 직격탄을 맞았다. 2011년 연봉 3억800만원을 받은 봉중근은 그러나 2012년 연봉이 1억5000만원으로 떨어졌다. 2억3000만원이 깎인 것이다. 당시 만 32세로 한창 때 나이였지만, LG의 신연봉제에 의해 대폭 삭감을 받아들여야 했다. 팔꿈치 부상과 수술로 2011년 4경기 등판에 그친 탓이었다.
최희섭의 경우 거듭된 부진으로 연봉이 깎인 케이스. 2011년 연봉 4억원을 받은 최희섭은 2012년 연봉이 1억7000만원으로 하락했다. 삭감액 2억3000만원, 삭감률 57.5%. 2010~2011년 4억원으로 최고치를 찍은 최희섭의 연봉은 2012년 1억7000만원, 2013년 1억5000만원, 2014년 1억원, 2015년 7000만원으로 매해 삭감됐다. /waw@osen.co.kr
▲ KBO리그 역대 연봉 삭감액 순위
1. 2018년 이용규(한화) : 5억원 삭감, 9억원→4억원(55.6%)
2. 2011년 박명환(LG) : 4억5000만원 삭감, 5억원→5000만원(90%)
3. 2014년 김병현(넥센) : 4억원 삭감, 6억원→2억원(66.7%)
4. 2008년 마해영(롯데) : 3억5000만원 삭감, 4억원→5000만원(87.5%)
5. 2008년 이종범(KIA) : 3억원 삭감, 5억원→2억원(60.0%)
6. 2008년 정민태(KIA) : 2억4080만원 삭감, 3억1080만원→7000만원(77.5%)
7. 2012년 최희섭(KIA) : 2억3000만원 삭감, 4억원→1억7000만원(57.5%)
7. 2012년 봉중근(LG) : 2억3000만원 삭감, 3억8000만원→1억5000만원(60.5%)
9. 2008년 김동수(히어로즈) : 2억2000만원 삭감, 3억원→8000만원(73.3%)
10. 2012년 박재홍(SK) : 2억원 삭감, 4억원→2억원(50.0%)
10. 2013년 박경완(SK) : 2억원 삭감, 5억원→3억원(40.0%)
10. 2017년 정대현(롯데) 2억원 삭감, 3억2000만원→1억2000만원(62.5%)
- 2013년 손민한(NC) : 2011년 6억원에서 2013년 5000만원, 5억5000만원 삭감(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