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해진 정지석, 올라운드 플레이어 진화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12.23 06: 02

정지석(22·대한항공)은 프로 데뷔 후 꾸준히 가속 페달만 밟았다. 어린 나이지만, 가지고 있는 재능은 숨길 수 없었다. 쟁쟁한 선배들이 버티는 대한항공의 레프트 포지션에서 입지를 넓혀갔다.
그렇게 달리다보니 어느덧 선배들을 앞서 가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너무 달리기만 했던 여파였을까. 지난 시즌은 처음으로 빨간 신호등에 걸렸다. 슬럼프라고 보기에는 부진이 꽤 오래 갔다. 쭉쭉 올라가던 정지석의 기록은 모조리 후퇴했다. 정상을 노리던 팀도 미끄러졌다. 정지석은 “지난 시즌은 많이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떠올린다. 목소리에서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예전에는 “멋모르고 배구를 했다”던 정지석이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에 왔다. 조금 못해도 ‘나이’라는 면죄부가 있었다. 2015-2016시즌은 처음으로 주전이 된 시즌이었다. 신이 나서 배구를 했다. 자연히 좋은 성적이 따라왔다. 하지만 그렇게 위상이 높아지자 부담감이 커졌고, 아직 어린 정지석을 짓눌렀다. 반성한 정지석은 올 시즌을 앞두고 “부담을 털어내자. 형들을 믿고 가자”는 초심으로 돌아왔다.

그런 정지석은 올 시즌 대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공·수 모두에서 만능 활약이다. 살림꾼 이미지가 강한 정지석은 22일 현재 리시브 3위(세트당 3.097개), 디그 1위(세트당 2.194개), 수비 2위(세트당 5.292개)를 기록 중이다. “리베로 이상의 수비력”이라는 호평도 나온다. 여기에 공격에서도 성과가 좋다. 팀 공격의 20.6%를 점유하며 52.53%의 좋은 성공률을 보여주고 있다.
정지석의 올 시즌 기록은 2015-2016시즌보다 다소 떨어진다. 그러나 인상은 더 깊다. 무엇보다 과감한 공격이 눈에 띈다. 지금껏 정지석은 전형적인 보조 공격수였다. ‘거포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올 시즌은 더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한다. 해결사 몫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지석은 “가스파리니의 점유율이 높다. 물론 리시브 부담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부담을 안고 해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극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진정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가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정지석은 2년 전과의 비교 질문에 “기록을 떠나 당시보다는 지금이 더 성숙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조금의 여유가 엿보였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정지석은 이제 팀의 대들보가 되고 있다. 주축 선수들의 부진과 부상에 선수 구성이 자주 바뀌는 대한항공이지만, 정지석의 자리는 고정이자 불변이다. 개인적인 주가도 치솟는다. 정지석은 다음 시즌이 끝나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다. 공·수를 겸비한 레프트 자원은 그 어떤 팀에서든 가치가 높다. 게다가 고졸이라 아직 어리다는 최대 메리트까지 있다. 질주는 이제 막 시작됐을지 모른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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