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라는 말로 포장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왔다. V-리그 전반기를 수놓은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오심'이었다.
한국배구연맹(KOVO)는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 기관이었다. 지난 2007-2008시즌, V-리그 정규리그에서 비디오 판독이 도입됐다. 현장 관계자들은 물론 팬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국내 4대 스포츠 최초 도입이었다. 프로야구는 2014년, 프로농구 역시 2014-15시즌부터 비디오 판독을 시작했다. 프로축구는 올 시즌부터 VAR(Video Assistant Referee, 비디오판독시스템)을 도입했다.
프로배구의 비디오판독은 올해로 시행 11시즌 째가 된 셈이다. 100% 정확한 판정은 사람인 이상 불가능하다. 비디오판독을 도입한 의도 자체가 실수를 인정하고 조금 더 정확해지고자 하는 노력 때문이었다. 타 종목과 달리 느린 그림으로 살펴보면 어느 정도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따라서 판정에 대한 불만도 그리 많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리그 전체가 요동칠 만큼의 오심이 벌어졌다. 지난 19일 수원 실내체육관서 열린 한국전력과 KB손해보험의 맞대결. 세트 스코어 1-1로 맞선 3세트 20-20 동점 상황이었다. 한국전력 이재목과 KB손해보험 양준식이 네트 플레이를 펼쳤다. 주심은 이재목의 캐치볼을 선언했다. 하지만 한국전력은 양준식의 네트 터치에 대해 비디오판독을 신청했다. 네트 터치 인정으로 KB손해보험의 실점.
권순찬 KB손해보험 감독은 즉시 어필했다. 이미 캐치볼이 선언된 뒤에 벌어진 일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어필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권 감독은 경기 지연으로 퇴장당했다. 오심으로 인한 실점에 레드 카드 추가 1실점. 스코어는 20-22 KB손해보험의 열세로 바뀌었다. 결국 흐름을 내준 KB손해보험은 결국 3세트와 4세트를 모두 내주며 무릎꿇었다.
여론의 질타는 당연했다. 단순히 '오심 논란'으로 끝날 수준이 아니었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에서 '남자프로배구 재경기 요구합니다'는 글까지 올라왔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20일 사후 판독으로 심판의 오심을 인정하고 21일 오전 상벌위원회를 열어 관련자 징계했다. 주심·부심에겐 무기한 출장정지, 심판·경기 감독관은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였다. 하지만 재경기 요청은 수용하지 않았다.
오심의 피해자는 현장과 팬이다. 최악의 오심이 있던 다음날, 한 가지 의미 있는 장면이 나왔다. 안산 상록수체육관서 열린 삼성화재와 OK저축은행의 맞대결. 세트 스코어 2-0으로 삼성화재가 앞서던 3세트 11-9 상황, 포 히트 상황이 나왔다. 하지만 3분이 넘는 비디오 판독 결과 '화면이 없는 관계로 판독 불가'가 선언됐다. 신진식 감독은 격양된 목소리로 경기 감독관에게 어필했다.
경기 후 신 감독은 "잘못된 판정이 나면 선수와 구단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이유는 코트 위에서 성과를 보이기 위해서다. 경기 외적인 요소로 실점하면 흐름이 끊긴다. 이는 치명적이다. 단순히 한 경기를 넘어 그 뒤까지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다"라며 "전날 상황도 있어 더 격하게 어필했다"고 강조했다.
사실 최악의 오심에 있어서 신진식 감독은 제3자다. 권순찬 감독 역시 그 경기 종료 후 "따로 얘기하지 않겠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했다. 이것이 사령탑들 보통의 반응이다. 괜히 심판진을 자극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불신이 쌓인 상황에서도 이렇다 할 반응을 못 보이는, 벙어리냉가슴을 앓고 있는 셈이다.
KOVO에서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전자기록시스템 도입이다. 이미 국제 대회를 비롯한 해외 리그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이 시스템은 우선 주심과 부심이 태블릿을 가지고 있고, 무선으로 연결된 노트북에서 정보를 제공한다. 제공되는 항목은 우선 로테이션 및 교체 상황. 점수, 그리고 테크니컬 타임 당시 시간 표시 등이다. 4라운드부터 V-리그에도 선을 보인다.
전자기록시스템이 오심 줄이기에 얼마나 혁혁한 공을 세울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KOVO가 적극적으로 체질 개선에 나선다는 자체로 의미 있는 변화다. 부디 4라운드부터는 오심이 아닌 경기 내용이 부각되기를 바란다. /i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