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경기에 NBA의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크리스마스 매치는 NBA가 가장 신경 쓰는 마케팅 포인트다. NBA는 시즌 전체 스케줄을 짤 때부터 팬들에게 가장 눈길을 끌 수 있는 빅매치를 일찌감치 성탄절에 배정해 놓는다. 성탄절을 맞아 농구가 미국최고의 실내프로스포츠라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뉴욕이라는 거대시장을 홈으로 가진 닉스는 NBA가 무조건 빼놓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올 시즌 NBA의 선택은 닉스 대 식서스였다. 필라델피아는 오랜 ‘탱킹’의 결과물로 벤 시몬스, 조엘 엠비드, 마켈 펄츠 등 유망주 대거 수집에 성공했다. 이들이 뉴욕의 심장으로 떠오른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와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정면충돌했다. 농구팬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데 충분했던 매치업이다.
▲ 엠비드 출전여부? 며느리도 몰라
기자가 조엘 엠비드를 취재한 것은 2013년 캔자스대학 데뷔전 이후 4년 만이었다. 당시에도 엠비드는 전미최고의 유망주 센터였지만, 슈퍼스타는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는 팀 동료 앤드류 위긴스가 모두 가져갔다. 4년 만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엠비드는 소속팀 필라델피아에서는 물론 NBA 전체에서도 스타대접을 확실하게 받고 있었다. NBA에서는 나이보다 실력이 곧 서열이다. 라커룸에서도 이미 엠비드가 최고 선수임을 확실하게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엠비드는 가장 먼저 트레이너에게 마사지를 듬뿍 받은 뒤 코트에 슛을 던지러 나갔다.
닉스와의 경기를 한 시간 30분 앞두고 브렛 브라운 식서스 감독의 공식인터뷰가 진행됐다. “오늘 엠비드 나옵니까?”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왔다. 브라운은 “아마도요. 현재 허리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요. 경기시작 전까지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엠비드가 안 나온다면 포르징기스는 어떻게 막을 건가요?” “포르징기스는 정말 무서운 재능을 가진 선수죠. 221cm 선수가 3점슛까지 잘 쏜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 엠비드도 이 시대의 하킴 올라주원입니다. 정말 다재다능한 기술을 가졌죠. 여러분들은 미래의 올라주원과 팀 덩컨이 될 선수들의 경기를 보시는 겁니다.”
브라운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엠비드의 출전여부는 경기 전까지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됐다. 마치 케빈 가넷이나 팀 덩컨의 말년과 같은 대접이었다. 결국 엠비드는 MSG에 모습을 드러냈고, 25점, 16리바운드, 3블록슛으로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엠비드가 올라주원이라면 벤 시몬스는 또 다른 의미의 매직 존슨이었다. 208cm의 선수가 포인트가드까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까. 이미 30년 전 매직 존슨이 충분히 보여줬지만 그럼에도 믿기 어려웠다. 시몬스의 팀내 위상은 이미 루키가 아니었다. 보통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루키나 후보 선수들은 라커룸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마켈 펄츠도 사복을 입고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시몬스는 베테랑들과 함께 마사지를 받고 라커에는 거의 머물지 않았다.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피곤하기 때문이다. 구단에서도 엠비드와 시몬스의 컨디션을 챙기는 트레이너가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이었다.
이날 가수 샤키라가 농구관람을 왔다. NBA 올스타전 하프타임무대까지 섰던 슈퍼스타다. 남편인 FC 바르셀로나의 중앙수비수 피케도 함께 왔다. 피케가 전광판에 비치자 축구를 잘 모르는 미국팬들 사이에서도 탄성이 터졌다. 세계적으로 따지면 피케가 웬만한 NBA선수보다 훨씬 대단한 선수다. 그런 피케가 경기 후 식서스 라커룸에서 벤 시몬스에게 다가가 수줍게 사진을 청하는 장면도 재밌었다.
▲ 뉴욕의 ‘최애선수’가 된 포르징기스
2015년 드래프트에서 뉴욕이 전체 4순위로 포르징기스를 뽑았을 때 울먹였던 꼬마 팬을 기억할 것이다.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도 못하면서 뉴욕 닉스가 미쳤다는 미국 기자들도 많았다. 불과 2년 만에 포르징기스의 위상은 완벽하게 역전이 됐다.
기자가 MSG에서 취재한 것은 2015년 NBA 올스타전이 마지막이었다. 뉴욕을 대표하는 스타로 카멜로 앤서니가 호스트를 맡았다. 다른 어떤 선수도 앤서니의 위상과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닉스 팬들은 대부분 멜로 저지를 입고 있었다. 이제 멜로는 OKC로 떠났다. 닉스는 포르징기스의 팀이 됐다. 팀스토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저지도 포르징기스의 6번이었다.
경기장에서 포르징기스의 위상은 대단했다. 그가 블록슛을 할 때마다 엄청난 환호성이 터졌다. 포르징기스가 바스켓카운트에 성공한 뒤 자유투를 쏘자 “MVP”까지 나왔다. 슈퍼스타부재로 하위권으로 전락할 줄 알았던 닉스에게 포르징기스는 이미 유일한 희망이 됐다.
이날 포르징기스는 22점, 7리바운드, 5블록슛을 기록하긴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부진했다. 터프한 NBA선수들을 상대로 아직은 몸싸움이 버거운 모습이었다. 포르징기스는 플라핑으로 오펜스파울을 유도하기도 했다. 야투가 4/15로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경기 후 닉스의 라커룸 분위기는 굉장히 무거웠다. 포르징기스는 약간 분을 삭이지 못하고 화난 상태로 인터뷰에 임했다. 포르징기스에게 한마디 듣기 위해서 취재기자 20여명이 달려드는 것을 보니 확실히 스타는 스타였다. 인터뷰가 끝나가 포르징기스는 화가 나서 의자를 발로 걷어찼다. 동료 선수들도 포르징기스 눈치를 보느라 분위기가 밝지 못했다. 경기 중에 별 활약도 없었던 프랭크 닐리키나가 대신 기자들의 인터뷰 타겟이 돼 고생을 많이 했다.
▲ ‘인생경기’ 펼친 에네스 칸터의 매너
에네스 칸터는 빠른 시간에 뉴욕이 사랑하는 선수가 됐다. 특히 르브론 제임스와 설전을 펼쳤던 것이 닉스 팬들의 사랑을 받는데 결정적 계기였다. 이날 MVP가 있다면 단연 칸터였다. 센터로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잡아내는 리바운드와 풋백득점이 백미였다. 신장은 좋지만 다소 소프트한 포르징기스를 보좌하는 터프가이 칸터는 너무나 매력적인 선수였다. 수비리바운드를 잡자마자 공을 건네고 속공의 최전선으로 뛰어나가는 순발력, 누구와 붙어도 뒤지지 않는 몸싸움, 공을 놓쳐도 재차 잡아서 몸으로 우겨넣는 파워풀한 모습이 센터로서 적격이었다.
이날 칸터는 무려 31점, 22리바운드를 해내며 인생경기를 펼쳤다. 대망의 30점은 풋백덩크슛으로 장식했다. MSG가 가장 시끄럽게 변하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칸터의 활약 덕분에 이날 크리스마스에 매우 비싼 티켓값을 지불했던 가장들이 오랜만에 자녀들에게 체면이 설 수 있었다. 칸터는 지난 비시즌 한국을 깜짝 방문하며 낯이 익은 반가운 선수였다. 마치 찰스 오클리의 재림을 보는 듯한 그는 뉴욕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가 됐다.
경기 후에 칸터를 보러 라커룸으로 향했다. 칸터는 “내가 아무리 많은 득점과 리바운드를 하면 뭐하겠나. 크리스마스에 닉스의 승리를 응원했던 모든 팬들에게 죄송하다”면서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패배로 기분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한국팬들에게 인사를 부탁했다. 칸터는 “지난 방문 때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고 돌아왔다. 날 응원해주시는 한국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계속 많은 응원 바란다. 좋은 성탄절 되길 바란다”고 쿨하게 답했다. 매너도 좋은 선수였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뉴욕=서정환 기자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