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화'(민병국 감독)의 주연을 맡은 배우 이일화와 양동근의 조합이 환상적이다. 이일화가 이끌고 양동근이 극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영화 '천화'는 한 치매노인의 인생을 바라보는 한 여인과 그녀의 곁에 선 한 남자의 관계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중에서 이일화는 십여년 전 제주도에 정착해 살아가는 윤정 역할을 맡았다. 치매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문호 역의 하용수를 어린아이처럼 달랜다. 요양소의 천사표 간병인으로 온화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조용하고 너그러울것만 같은 윤정의 또 다른 이면이 시작된다. 일본어를 잘 하고 제주도 카페에서 퀼트를 가르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이일화는 일본어 독백으로 묘한 신비로움을 전한다. 또한 그녀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절대 곁을 주지 않는 미스터리함까지 더했다.
묘한 그녀에게 다가오는 제주도의 자유분방한 사내 종규와 있을 때의 모습은 또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종규의 접근을 허락하는 듯 하면서도 욕정만을 원하는 그에게 진절머리를 느낀다. 이일화는 과거 문화와의 때를 꿈처럼 떠올리며 절망과 회환의 감정에 휩싸이며 눈물을 흘린다.
이일화에게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히스테리. 꿈에서 현실로, 이제는 생에서 죽음으로 달려가는 상황 속에서 문호의 아내에게, 그리고 오랫동안 작업했던 퀼트를 불에 태우면서 날카로운 히스테리를 표출한다. 통제불가능한, 통제하기 싫은 그 감정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시작부터 엔딩까지 이일화의 다채로운 연기 선율이 이어진다면 극의 임팩트를 주며 생기를 불어 넣는 역할은 양동근이 했다. 양동근만이 할 수 있는 실제인듯 생활인듯 경계가 없는 자연스러운 연기가 극을 살려냈다.
극중에서 양동근은 소설 쓰기에 집착하고 그림을 그리는 자유로운 종규 역할을 맡았다. 제주도 유명 명소 앞에 수현(이혜정)을 데려다주면서 "믹스커피 2봉, 물 많이" "추운데 나 들어갈까봐" 등 안내원과의 자연스러운 호흡이 인상적이다. 평범한 장면 속에서 그의 연기가 더욱 빛난다.
여기에 별생각 없는 윤정에게 "나를 왜 그렇게 좋아해요?"라며 능청스럽게 툭툭 내뱉는 말투, "사랑합니다. 이란성 쌍둥이처럼"이라며 진심을 가장한 욕망 등을 리얼한 연기로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해냈다.
'천화'의 이일화와 양동근 조합뿐만 아니라 치매 노인을 연기한 하용수, 수현 역의 이혜정, 나온 역의 정나온 등은 제주를 배경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독특하고, 독특하면서도 어딘가 고립된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기해냈다.
'천화'에 유독 많이 나오는 단어는 '꿈'이다. 꿈과 현실,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묘하게 연결되고 이어진다. 이일화 양동근 등이 '천화'라는 꿈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한다. 이 장면이 꿈일까, 현실일까, 진실은 무엇일까 답을 내려고 하기보다는 배우들의 호흡과 제주의 풍경을 즐기며 천천히 따라가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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