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의 인디살롱] 뷰렛 문혜원, 아니 솔로 문정후를 만나다
OSEN 김관명 기자
발행 2018.01.24 15: 11

모던록 밴드 뷰렛의 보컬 문혜원이 데뷔 15년만에 솔로 앨범을 냈다. 개인 활동명은 문정후. 옥홀 정(珽)에 만날 후(逅)를 써서 옥으로 된 홀, 즉 공연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뜻을 담았다. 지난 16일 나온 솔로 1집 ‘대항해시대’ CD에는 따끈따끈한 신곡 9곡과 함께 자전 에세이 및 단편소설을 수록한 책자까지 포함됐다. 
책자를 직접 읽어보니 뮤지션이자 한 인간으로서 문정후를 좀더 깊이 알 수 있는 안내서이자, 신곡 9곡에 대한 더할나위없이 친절한 가이드이기도 했다. 삶의 편린을 낚아채는 능력과 유려한 글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오는 29일 앨범발매 기념공연(오후8시 서울 합정동 폼텍웍스홀) 준비에 여념이 없는 문정후를 [3시의 인디살롱]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대항해시대’ 유통사인 미러볼뮤직에서 이뤄졌다. 

인터뷰에 앞서 문혜원과 뷰렛의 발자취를 소개하면 이렇다. 1980년생인 문혜원은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재학 시절인 2001년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여주인공 인희(오지혜)의 아역으로 데뷔했다. 2002년 서울예대 친구들과 3인조 모던록 밴드 뷰렛(Biuret)을 결성, 첫 EP ‘My Name Is Biuret’을 낸 것은 2005년 7월. 당시 멤버는 보컬과 기타의 문혜원을 비롯해 기타의 이교원, 베이스의 안재현, 드럼의 엄진용이었다. 
뷰렛은 이후 2007년 1집 ‘Beautiful Violet ‘(뷰렛이라는 이름도 이 뷰티폴 바이올렛에서 따왔다), 2009년 2집 ‘Dreams Come True’, 2011년 EP ‘Goodbye’를 냈다. 한동안 휴지기를 갖던 뷰렛은 2015년 군제대한 엄진용이 다시 가세하면서(그동안 드럼은 세션 체제) 3월부터 11월까지 싱글을 9장이나 연이어 내는 기염을 토했다. 2016년 9월에는 3집 ‘세계의 끝’을 냈다. 한편 문혜원은 2006년 뮤지컬 ‘황진이’의 주역으로 발탁된 후 ‘노트르담 드 파리’, ‘헤드윅’, ‘대장금’, ‘잭 더 리퍼’, ‘서편제’ 등 여러 뮤지컬에서 맹활약했으며, 지난 2014년 3월 배우 박태성과 백년가약을 맺었다.  
= 반갑다. 솔로 신곡 잘 들었고, 책자 잘 읽었다. 노란색 형광펜으로 줄까지 치며 읽었다(웃음).
“내 책을 이렇게 열심히 읽어주셔서 감사드린다.”
= 책자에는 7편의 자전 에세이와 1편의 단편소설 ‘사춘기’가 실렸다. 에세이 제목을 보니 신곡 트랙 순서와 일치한다. 신곡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일종의 사용설명서 같았다.
“그렇게 비춰질 수도 있겠다. 1번 인트로를 빼고 곡 순서대로 7편의 에세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춘기’를 실었다.”
 = 우선 솔로로 나올 생각은 어떻게 했나. 
“20대 때에는 거친 디스토션 사운드를 좋아해 밴드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니 예전 분노에 찬 마음이 이제는 ‘그럴 수도 있지’ 식으로 변했고 다양한 음악을 듣게 됐다. 사실 어렸을 때에는 클래식의 웅장한 사운드를 좋아했다. 하지만 뷰렛이 이런 음악을 하기에는 색깔이 달랐다. 노래를 쓰면 자꾸 (뷰렛과는 색깔이 다른) 그런 노래가 나와 고민하다가 솔로로 나오게 됐다. 물론 뷰렛은 계속 한다.”
= 왜 ‘문정후’라는 다른 이름을 쓰게 됐나. 
“제 음악인생의 2막이기도 하고, 전에 하던 음악과는 전혀 다르기도 해서 구분을 짓고 싶었다. 음악도 그렇고, ‘문정후’에서는 느끼는 중성적 느낌이 좋았다.”
= 결혼 생활은 평안한가. 
“사실 결혼 전에는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 한국적 참한 며느리감은 아닌데, 다행히 신랑과 시부모님이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셔서 지금은 잘 살고 있다. 시아버지는 차에서도 제 음악만 듣고 김해에서 열린 뷰렛 단독공연 때는 1박2일로 찾아주시기까지 했다. 결혼은 제게 불필요한 감정 소비 없이 삶에 안정을 가져다줬다.”
= 신곡을 듣다보니 뮤지컬 발성이 도드라진다.
“뮤지컬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뮤지컬을 하면서 올바른 발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중요한 것은 내추럴 보이스(자연스러운 목소리)라는 것이다. 말하는 내 목소리로 하자, 지금도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미자 선생님처럼 노래하고 싶기 때문이다.”
= 이제 신곡을 함께 들어보자. 자세한 코멘터리를 부탁드린다. ‘Intro’는 항해를 막 시작하려는 우렁찬 뱃고동처럼 들린다. 
“맞다. 뱃고동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대항해시대’도 그렇고 관악기를 많이 넣었다. 이 곡은 만든 지 오래된 곡인데, 이렇게 써먹을 줄은 물랐다(웃음). 뮤지컬로 따지면 오버춰(서곡) 느낌의 곡이다. 하지만 오버춰라고 하면 너무 거추장스러워 그냥 인트로라고 지었다. 제 배가 새롭게 출항하는 것을 알리는 곡이다.”
= ‘대항해시대’는 에세이에 나오는 이 대목, ‘..모든 파도를 맞고 모든 곳을 헤매어온 내 배를 나는 사랑한다. 내 키는 내가 쥘 것이다’는 표현이 사무치도록 인상적이었다. 
“실은 운전하면서 생각한 곡이다. 30대 중반에 면허를 땄는데, 운전하는 것도 사람 사는 것과 비슷하더라. 빨리 가고 싶어도 빨간 불에 막혀 못가는 경우도 많다. 에세이에 쓴 그대로, 잭 스패로우 선장이 자신의 낡은 배 블랙 펄을 사랑하고 자신이 정한 방향으로 항해를 했듯이 내 키는 내가 쥘 것이다. (삶의) 초보운전자이지만 내 운전대는 내가 잡을 것이다. 어쨌든 이 곡은 자신의 살아온 흔적들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 ‘유하’는 시인의 이름인 줄 알았는데 친한 사람의 딸 이름이더라.
#. ‘유하’ 가사(부분) = 왜 잠 못 이룰까 맘 떨릴까 넌 아무것도 안 했는데 바람도 불지 않는데 내 마음 왜 흔들릴까 너는 대체 누굴까 너의 향기 무얼까 질문은 끝이 없지만 대답은 단 하나뿐 사랑 그것은 내겐 단 하나 오직 너일 뿐 사랑 그것은 내겐 단 하나 오직 너일 뿐 사랑은
“아기는 안나아봤지만 아가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에서 썼다. 유하의 엄마인 친한 언니가 그랬다. ‘이렇게 아무 조건 없이 누구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물론 이 노래는 아기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그냥 사랑 노래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 유하라는 아이한테는 이 곡이 큰 선물이 될 것 같다. 
“아직 언니한테 앨범에 실렸다고는 말 안했다. 유하는 지금 4살 됐을텐데 말괄량이에 아주 끼가 많은 애다.”
= ‘Crying Over U’는 듣는 내내, 에세이를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심정을 담았다. 문혜원씨한테는 오빠였다. 
“에세이에도 썼지만 (오빠가 8살때 교통사고로 사망한) 기억도 잘 안나고 슬프지도 않다. 너무 어릴 때였으니까. 하지만 20대 나이의 엄마가 뱃속에서 키운 자식을 하루아침에 잃고 살아온 여정을 생각해보니 나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당시 엄마의 까만 손발톱으로 미뤄봤을 때 엄마의 고통이 짐작됐다.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갑작스러운 사고와 재난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또한 일찍 (저 세상으로) 가는 분들은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가는 것일 뿐,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내세에 대한 생각도 담았다.“
= ‘바람아 불지마’는 몹시 외로운 화자가, 세상은 다 변한다고 믿는 화자가 사랑을 갈구하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애인한테서 하느님의 사랑을 원한다. 그런 사랑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시험하게 되고 원망하게 된다. 실은 자신의 문제인데 상대의 문제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아기처럼 사랑을 남들한테 주지는 못하고 계속 달라기만 하는 그런 나 자신을 담은 노래다.”
= 6번 트랙 ‘이방인’이 타이틀곡이다. 에세이를 읽어보면 삶을 힘들어 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고등학생 때 쓴 곡이다. 원래는 뷰렛 3집에 실으려고 했는데 애들한테 ‘까였다’(웃음). 사실 위험한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몽당연필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소처럼, 나 자신을 다 쓴 후에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이런 생각들이 계속 쏟아져서 노트를 한 권 사면 하루에 다 쓸 정도로 계속 글을 썼다.”
= 에세이에 나오는 ‘생선은 눈을 시퍼렇게 뜨고 ‘내가 죽어 네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물어본다’는 구절이 섬뜩하다. 
“(사람이 먹고 살기 위해 물고기를 죽이듯) 어떤 기준으로 생사가 결정되는지 고민이 많았다.”
= ‘Paradise’와 ‘오늘 밤 결혼해줘’는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뀐다. 행복 그 자체다. 
#. ‘Paradise’ 가사 = 오늘 밤 인생은 파라다이스 원했던 모든 것 오늘 밤 이곳은 파라다이스 네 곁에 있는 것 오늘 밤 우리는 태어나 새로운 세계가 오늘 밤 난 너를 따라가 빛나는 별 하나 내 품에 안겨요 펼쳐요 너의 날개 오늘 아침도 I love u 어제보다 더 I love u 오늘보다 내일 더 I love u 오늘 밤 인생은 파라다이스
“‘Paradise’는 성당에서 혼배성사를 올릴 때의 분위기를 담은 곡이다. 그래서 오르간 소리를 집어넣었다. 제 음악의 2막은 이번 솔로 앨범이지만, 제 인생의 2막은 결혼이었다. 신랑을 ‘달을 품은 슈퍼맨’이라는 작품에서 처음 만났는데, 유치하긴 하지만 내 성이 문(moon, 달)이고 신랑 이름이 클 태에 별 성이다. 그래서 ‘달을 품은 큰 별’이라는 자선 콘서트를 결혼후 2번이나 했다. 올해에도 할지는 아지 결정못했다.”
= 문혜원씨 결혼식은 당시 홍대 클럽에서 열려 큰 화제가 됐었다. 
“브이홀이었다. 뮤지컬배우 이영미 언니가 축가를 해줬는데 뒷풀이에서 ‘너 참 진짜 멋대로 사는구나’라고 하더라(웃음).”
= 끝으로 ‘사춘기’다. 단편소설을 읽다보니 앞에 나왔던 에세이들의 핵심 메시지가 자주 반복해 등장하더라. 그리고 A가 본인인 것 같다. A처럼 실제로도 기독교 학교를 나왔나. 
“아니다. 명성여고라고 불교학교를 나왔다. 소설은 소설로 봐주시라.”
= ‘사춘기’를 들어보면, 단편소설을 읽었기 때문인지 마치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그런 느낌이 든다.
“누군가가 그랬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는 너무 아깝다’고. 저 역시 사춘기 때는 나에게 주어진 열정과 체력과 재능을 하나도 탐험하지 못하고 헤매기만 했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친구들도 어떤 누구도 내게 위로가 되지 못했다. 유일한 위로가 음악이었다. 외국의 밴드 음악, 그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을 붙들고 10대 여자애가 살아갈 수 있었다. 소설에 나오는 A와 B는 결국 고독하고 미성숙한 두 명이 서로 의지해서 그 힘든 사춘기 시절을 견디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 곡에, 에세이에, 단편소설에, 거기다 뮤지션의 코멘터리까지 들으니 ‘대항해시대’라는 앨범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아, 재킷 디자인은 누가 했나. 
“이든과 이효라는 친구가 해줬다. 제 트레이드 마크가 5대5 가르마에 긴 머리카락인데, 제 머리를 파도처럼 표현했다. CD 안의 속지를 펼쳐보면 긴 머리를 바탕에 두고 성모 마리아(Paradise), TV(이방인), 험악한 곰인형(사춘기) 등 제 앨범에 실린 곡들과 관련한 이미지들이 박혀있다.”
= 29일 쇼케이스도 기대된다. 
“앨범에 실린 곡을 다 들려드릴 생각이다. 책자를 다 읽어보고 오실 거라고 생각해서 좀더 모노드라마 같은 공연이 될 것 같다. 앞으로 문정후라는 한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일인극을 만들고 싶은데 이번 쇼케이스는 그 맛보기가 될 것이다.”
= 올해 계획은.
“음악극 형식의 일인극을 대학로 소극장에서 매달 조금씩 하고 싶다. 대본이 자리잡으면 뮤지컬 지원사업에도 제출할 생각이다. 사실 이번 앨범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았다. 이밖에 여러 장르랑 콜라보도 하고 싶고, 뷰렛도 열심히 할 것이며, 뮤지컬도 한 작품 더 할 생각이고, 문정후 2집도 준비할 것이다.”
= 대단하다. 긴 인터뷰, 수고하셨다. 29일 쇼케이스에 꼭 가겠다.
“수고하셨다. 쇼케이스 때 뵙겠다.”
/ kimkwmy@naver.com
사진=최규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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