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별로 없었다. 대신 캠프 참가 선수 중 가장 먼저 방망이를 잡았다. 그리고 하루 종일 방망이를 돌렸다. 말이 별로 필요 없기도 했다. 고요한 경기장을 좌우중간으로 가르는 날카로운 타구, 그리고 10㎏ 이상을 감량해 한결 가벼워진 체구가 이재원의 각오를 대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재원은 지난해 11월 열렸던 SK의 2017년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 참가했다. 보통 주전급 선수들은 11월에 휴식을 취한다. 잘 쉬는 것도 전략이다. 하지만 이재원은 달랐다. 자청으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는 지난해 성과가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군 제대 후 오름세를 그리고 있었던 이재원의 야구 그래프는 지난해 완전히 뚝 꺾였다.
공·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주전 포수로 더 성장할 것이 예상됐으나 수비와 리드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 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타격 부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재원은 지난해 114경기에서 타율 2할4푼2리, 9홈런, 42타점에 머물렀다. 공격력만 놓고 보면 리그 정상급 생산력을 뽐냈던 이재원의 성적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공격이 안 되다보니 심리적으로 쫓기는 점도 있었다.
이재원 또한 “뭐부터 잘못됐는지 모를 정도로 꼬였다. 페이스가 빨라 시즌 초반에 잘 치고 나가는 스타일인데, 초반부터 너무 못했다. 처음부터 다 꼬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지난해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시즌 전 받은 무릎 수술의 여파라고 보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실제 지난해에는 시즌 전 기술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재원은 굳이 핑계를 대지 않는다. 단지 “다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 했다.
올해는 조금 다르다. 무릎 부상의 후유증은 완전히 털어냈다. 이재원도 이는 자신한다. 이재원은 “예전처럼 기술훈련 등 정상적인 운동을 다 했다. 정상적인 몸 상태와 함께 캠프에 들어간다”고 했다. 쉴 새 없는 훈련 일정이 이를 가능케 했다. 11월 마무리캠프에 이어 12월에도 개인 훈련으로 체중을 유지했고, 1월 초에는 일찌감치 괌으로 나가 구슬땀을 흘렸다. 이재원은 “기술훈련을 하다 보니 작년보다는 확실히 좋다. 체중도 가고시마 당시를 유지하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이런 이재원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기대감 일색이다. 마무리캠프 당시 이재원의 타격훈련을 지켜본 염경엽 단장은 “확실히 좋아졌다”고 기대를 걸었다. 박경완 배터리코치 역시 “이재원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내년에는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정경배 타격코치는 “타격은 워낙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은 선수다. 자신의 것만 찾으면 되는데 마무리캠프를 통해 많이 나아졌다”고 믿음을 드러냈다. 준비는 착실히 했으니 이제 자기 것만 보여주면 된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시즌이다. 생애 첫 프리에이전트(FA) 자격 행사를 앞두고 있다. 아무래도 직전 시즌 성적에 금액이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재원은 FA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이재원은 “결국 중요한 것은 팀 성적”이라면서 “도와주시는 분이 많다. 항상 감사하고 있다. 얼마나 내 플레이를 하느냐가 관건일 것 같다. 부상 없이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리셋 버튼을 누른 이재원이 부팅을 완료하고 새로운 출발점에 선다.
2018년 프리뷰
“SK는 이재원이 주전포수로서 중심을 잡고 가야 하는 팀이다”. 베테랑 포수이자 주전 경쟁자인 이성우의 말에서 이재원이 가지는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부진하기는 했지만 팀의 주전포수로 시즌을 시작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착실히 준비를 했고, 지난해 성적이 워낙 바닥이었던 만큼 반등을 의심하는 자가 없다. 좋은 성적을 낸다면 FA 전선도 밝아질 것이다. 3할을 칠 수 있는 포수를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다. 이재원은 “남을 도울 수 있을 정도로만 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희망사항을 드러냈다. 한펴으로는 2018년 유력한 주장 후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왕조를 경험한 이재원 또한 팀의 자존심을 잊지 않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