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 각 구단들은 등록선수를 65명까지 지정할 수 있다. 자리가 없는 나머지 선수들은 육성선수 신분으로 전환된다. 육성선수라고 해도 퓨처스리그(2군) 경기 출전에는 걸림돌이 없다. 그러나 1군에는 반드시 등록선수만 뛸 수 있다. 등록선수와 육성선수의 차이는, 2군을 벗어나려는 순간 크게 드러난다.
최진호(26·SK)는 2011년 SK의 지명을 받고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7년의 시간이 지날 시점까지, 단 한 번도 등록선수명단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었다. 프로필상 그의 이름 앞에는 꼭 신고선수, 육성선수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매년 신인들도 3~5명씩 등록선수명단에 포함되지만, 최진호에게는 그런 사소한 행복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군 복무도 현역으로 마쳤다.
기본적으로 실적이 없었다. 부상도 잦았다. 그렇다고 지명 당시부터 아주 큰 기대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매년 ‘방출 후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매해 가을과 겨울이 선수생활의 위기였다. 그러나 최진호의 잠재력을 아까워 한 코치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김원형 현 롯데 수석코치, 김경태 SK 퓨처스팀 투수코치들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코치들의 강한 반대에 최진호는 몇 번이나 방출 리스트에서 빠질 수 있었다.
코치들이 구단 프런트와의 의견 대립까지 감수하면서 나서는 이유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좋은 재질을 가지고 있었고, 부상만 없다면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도중, 최진호가 구단의 눈길을 사로잡는 한 번의 테스트가 있었다. 투구시 팔의 회전속도는 SK 2군 선수들 중 단연 으뜸이었다. 특히 커브의 회전속도는 메이저리그(MLB) 수준이었다. 여기에 피로도 측정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회전이 빠르면서도 피로가 덜 쌓이는 천부적인 팔을 가지고 태어난 셈이다. 이에 구단은 지난해부터 최진호를 장기적인 선발 자원으로 보고 집중 육성하고 있다. 비록 잔부상 탓에 시즌을 완주하지는 못했으나 가능성을 내비쳤다. 최진호는 지난해 퓨처스리그 13경기에서 61⅓이닝을 던지며 4승3패 평균자책점 4.11을 기록했다. 다소간 기복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잘 던지는 날은 6~7이닝도 소화하며 이닝이터의 면모도 과시했다.
2할4푼4리의 피안타율, 상대 장타를 억제하는 능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평균구속도 140km 초반을 넘었다. 손혁 신임 투수코치 또한 지난해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서 최진호에 대해 호평했다. 당장 1군에서 뛸 만한 선발투수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그렇게 상승세를 이어가던 최진호는 2018년 SK의 등록선수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최진호는 등록선수가 되고, 팀의 플로리다 1차 전지훈련에도 참가하는 것에 대해 “힘든 시기도 많았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래서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22살 때 교육리그 참가차 미국에 간 것을 제외하면 미국이 처음이다. 1군 캠프도 당연히 처음이다. 최진호는 “정말 가고 싶었던 1군 캠프였다. 가고 싶어도 못 가던 캠프였는데 기대가 된다”면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여러 방면에서 준비를 잘 하겠다”고 다짐했다.
착실하게 몸도 만들었다. 12월에는 박종훈 이정담(롯데) 김태훈 등과 함께 훈련을 했다. 1월에는 아예 강화SK퓨처스파크에 들어가 개인적으로 훈련을 했다. 최진호는 “몸 상태는 좋다. 계속 일정을 따라 잘 움직였다”면서 “언제까지 2군에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잘 해야 한다. 내가 열심히 하고, 그간 받은 것에 대해 보답해야 한다”고 의지를 다졌다. 좀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야구인생을 살았던 최진호가 8년 만에 선명한 출발선을 찾았다.
2018년 프리뷰
구단에서 최진호를 불펜이 아닌, 선발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1군 데뷔가 오히려 늦어질 수도 있다. 2차 전지훈련을 1군의 오키나와가 아닌, 2군의 가고시마로 간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구단은 시간을 가지고 확실하게 선발 자원으로 키운다는 심산이다. 당장 올해가 아니더라도 내년 이후에는 1군 선발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일단 올해 2군 선발진 한 자리는 사실상 보장 받았다. 꾸준히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시즌을 완주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다면 단점도 서서히 보완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등록선수가 되기까지 8년을 기다렸다. 그 긴 시간을 생각하면 좀 더 확실한 1군 데뷔를 위해 1년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