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언니' 한수진, 악몽 잊고 단일팀에 건넨 이별 선물
OSEN 우충원 기자
발행 2018.02.20 14: 13

#남북 단일팀의 역사적 첫 경기였던 스위스전서 한수진은 결정적인 기회를 맞았다. 본인이 만들어 낸 기회였다. 0-0으로 맞선 1피리어드 8분 30초 김희원이 상대선수와 몸싸움을 펼친 끝에 퍽이 흘렀다. 한수진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퍽을 잡고 단독 드리블 돌파를 했다.
한수진은 상대 골리가 가장 막기 힘들다는 탑 코너로 회심의 슈팅을 시도했다. 그러나 운이 따르지 않았고 퍽은 골대를 맞고 튀어 나왔다.
새라 머리 감독이 이끄는 남북 단일팀은 20일 강원도 강릉 관동 하키센터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7~8위 결정전에서 스웨덴에 1-6(1-2 0-1 0-3)으로 패했다.

이로써 남북 단일팀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세계의 높은 벽을 남북 단일팀으로 탈출 하자고 노력했던 단일팀은 비록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첫 올림픽 단일팀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한수진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예원학교-서울예고-연세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시절 잠깐 배웠던 아이스하키를 재수시절 다시 시작했다. 어머니에게 몰래 아이스하키를 하는 것을 걸렸지만 긴 설득 끝에 대학에 입학하면 시켜주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한수진은 연세대에 입학했고 2007년 대표팀에 선발됐다.
피아니스트로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한수진에게는 아이스하키가 전부였다. 2011년에는 일본으로 아이스하키 유학도 떠났다. 200만 원을 들고 떠난 유학은 쉽지 않았다. 언어도 배워야 했고 노력도 필요했다. 방세 1500만 원을 대출 받기도 했다. 3년만에 갚았지만 일본에서 새로운 아이스하키를 배운다는 것이 행복했다.
큰 지원이 없던 시절에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한수진은 최선참으로 역할을 다했다. 남북 단일팀이 결성된 뒤 한수진은 숨은 리더십을 발휘했다. 뒤에서 조용하게 후배들을 위한 시간을 만들었다. 남북 단일팀의 경기력을 빨리 끌어 올릴 수 있도록 동생들에게 친해질 기회도 더 만들어 줬다.
한수진이 나서지 않은 이유는 당연하다. 그는 사령탑인 머리 감독 보다 나이가 많다. 스포츠 세계에서 나이는 크게 상관 없지만 한수진은 제 할일을 다했고 후배들을 위해서도 서포트 했다.
첫 경기를 마친 뒤 한수진은 아쉬움이 컸다. 만약 자신의 슈팅이 골로 연결됐다면 결과론적이지만 큰 점수차로 패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기 대문이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뛰었다. 비록 공격진에서 후순위로 밀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동생들과 감독님 그리고 남북 단일팀을 위해 뛰었다.
자신의 갈 길을 가던 한수진은 기어코 골을 터트렸다. 1피리어드 0-1로 뒤진 상황에서 얻어낸 파워 플레이 기회서 자신에게 다시 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박종아가 골대 뒤에서 날카롭게 연결한 퍽을 한수진은 침착한 슈팅으로 득점, 1-1로 스코어의 균형을 맞췄다.
비록 패배를 당했지만 한수진은 맏언니의 역할을 다했다. 한국 아이스하키 뿐만 아니라 남북 단일팀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끊임없이 뛴 노장의 골은 역사속으로 사라질 남북 단일팀에게 귀중한 선물이 됐다. / 10bird@osen.co.kr
[사진] 강릉=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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