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있는 드라마였다. 논란의 여자 팀추월 대표팀이 마지막 질주를 마쳤지만 경기장엔 공허한 박수 소리만 맴돌았다.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으로 구성된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지난 21일 밤 강릉 스피드스케이트 경기장서 열린 폴란드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7~8위 결정전서 3분07초30에 골인하며 최하위가 됐다.
대표팀은 19일 펼쳐진 준준결승서 3분03초76을 기록, 8개팀 중 7위에 그치며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이날 준준결승 때보다 3초54 뒤진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짜여진 각본 같았다. 김보름과 박지우가 앞에서 노선영을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원팀'의 장면을 연출했다. 노선영도 이를 악물고 젖먹던 힘을 짜냈다. 셋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몸처럼 뛰었다.
그러나 정작 기록은 노선영이 홀로 들어온 준준결승 때보다 한참 떨어졌다. 셋은 최대한 안정적으로 합을 맞췄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들은 레이스가 끝난 뒤 취재진의 인터뷰를 거부한 채 도망치듯 잰걸음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중계팀의 현장 인터뷰는 물론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 대기하던 수많은 미디어의 응답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셋 모두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퇴장했다.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대회 준준결승서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김보름과 박지우가 노선영보다 한참 먼저 결승점에 들어오면서 논란의 불씨가 지펴졌다. 최종 3번 주자였던 노선영의 골인 시간이 한국의 기록이 되기 때문.
여기까지는 다른 팀에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이해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김보름과 박지우가 울고 있는 노선영을 놔두고 먼저 경기장을 빠져나가면서 발생했다. 당황한 밥 데용 코치가 홀로 눈물을 훔치는 노선영을 위로하는 장면이 포착되면서 일파만파로 파장이 커졌다.
설상가상 김보름과 박지우가 인터뷰서 경솔한 발언까지 하며 기름을 부었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백철기 감독과 김보름이 20일 오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해명에 나섰지만 노선영의 반박과 백 감독의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속시원한 해명이 필요했다. 국민들도 진실을 원했다.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홈팬들은 김보름에게 미미하지만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노선영에게는 열화와 같은 환호와 박수갈채로 힘을 실었다.
그러나 여자 팀추월의 마지막 질주는 '그들만의' 성공으로 끝났다. 속시원한 해명도, 레이스도 없었다. 김보름도, 노선영도, 백철기 감독도 자신의 입장을 전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더욱 커져만 갔다.
결자해지가 필요했다. 7~8위 결정전은 사실상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무대였다. 각본 있는 드라마와 일관된 침묵이 더해져 논란은 끝까지 미제로 남았다. 최종 레이스마저 공허한 메아리로 끝났다./dolyng@osen.co.kr
[사진] 강릉=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