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지역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하성진(21·SK)이라는 이름 석 자는 매우 강렬했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혹자는 “야구 천재”라고도 했다. 그 또래의 선수 중 가장 먼저 전국적인 클래스에 오른 선수로 명성이 자자했다.
야구를 워낙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 글러브와 배트를 잡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야구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5~6학년 형들과 같이 경기에 뛰었다.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동인천중학교 1학년 때도, 인천고등학교 1학년 때도 주전 한 자리를 꿰찼다. 인천고 시절에는 붙박이 4번 타자였다. 청소년대표팀에서도 중심타자로 활약했다. 공·수 모두에서 재능이 넘쳤다. 노력으로는 따라 하기 쉽지 않은 그 뭔가가 하성진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때 슬럼프가 있었고, 프로 지명 뒤에는 더 큰 시련이 닥쳤다. 프로 지명을 받고 막 팀에 합류했던 2016년 2월 횡단보도를 건너다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나 왼쪽 정강이를 크게 다쳤다. 정강이뼈가 모두 으스러졌을 정도의 중상이었다. 그 때문에 2016년은 사실상 모두 병상에서 보냈다. 9월에야 가벼운 운동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큰 상처를 입은 오른 다리는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뛸 때 절뚝이는 모습도 있다. 하성진은 “평생 안고 가야 할 부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번뜩이는 재능은 어디 가지 않는다. 병상을 털고 일어난 하성진은 SK 퓨처스팀(2군)에서 주목하는 내야 자원이다. 2017년 한 해 동안 몸을 다잡은 하성진은 올해 가고시마 2군 전지훈련에서 좋은 타격 페이스를 선보이며 코칭스태프의 기대를 한몸에 모으고 있다.
사실 지난해 대만 2군 전지훈련 당시에도 페이스가 좋았던 하성진이다. 캠프 최우수선수(MVP)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오버 페이스였다고 인정한다. 하성진은 “너무 바짝 올라왔었다. 한국에 오니까 이상해지더라”고 떠올렸다.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하성진은 지난해 2군 리그에서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퓨처스리그 46경기에서 타율 1할8푼4리에 머물렀다. 호쾌했던 스윙은 나오다 말았다. 캠프가 독이 됐던 셈이다.
“아쉬움이 엄청 많았다. 생각만큼 된 것은 아예 없고, 얻은 것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쉰 것 마냥 1년을 보낸 것 같기도 하다”고 2017년의 아쉬움을 곱씹는 하성진이다. 하지만 자신의 말과 다르게 얻은 것이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해를 교훈 삼아 올해는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다. 하성진은 “힘든 시기였지만, 이것도 하나의 거쳐 가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이겨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긍정적인 면을 찾았다.
입단 3년차가 됐지만 부상과 부진으로 아직 프로를 전혀 모른다고 말한 하성진은 프로가 어떤 분위기인지, 어떻게 야구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끝없이 싸우고 있다. 하지만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몸으로 느끼고 있다. SK는 퓨처스팀조차 마운드와 외야가 포화 상태로 가고 있다. 1군에서 내려올 선수들을 고려하면 2군 선수들은 출전 기회조차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하지만 내야는 다르다. 당장 수적으로도 부족하다.
구단은 임석진(3루수), 박성한(유격수), 안상현(2루수), 하성진(1루수)라는 젊은 자원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하성진도 “올해가 쉽게 찾아오지 않을 기회인 것 같다. 내야수의 수가 많이 없다. 올해 자리를 잡지 못하면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면서 “이런 틈을 타서 2군에서라도 자리를 잡고 싶다. 나중에 1군에서 콜업이 필요할 때쯤 1순위로 이름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당차게 이야기했다. 얼굴에는 조금씩 미소가 돌아오고 있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