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가득했던 미국에서의 2년과 한국 복귀. 김현수에게 여론은 차가운 낯빛이다. '타격 기계' 김현수(30·LG)는 정말 실패자일까?
# 미국에서 꺼진 '타격 기계'의 엔진
메이저리그 도전 때까지만 해도 격려가 주를 이뤘다. '타격 기계'가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통할지 궁금하다는 반응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메이저리그를 꿈꿔왔던 김현수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데뷔 첫해인 2016년 시범경기 초반, 부진이 시작됐다. 안타 하나를 신고하기 힘들었고 조금씩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다. 김현수가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발동해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현수는 제한된 기회 속에서도 조금씩 활약을 이어갔다. 좌투수를 구경조차 못하는 현실에서도 우투수 상대로 자신의 역할을 다졌다. 2016시즌은 데뷔 첫 해임을 감안할 때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김현수의 2017년은 어두웠다. 꿈이었던 메이저리그가 현실이 됐을 때, 동화 같은 스토리는 없었다. 타격 기계는 작동을 멈췄다. 결국 김현수는 2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했다. 김현수는 '친정팀' 두산의 제의가 없자 결국 LG와 손을 잡았다. 4년 총액 115억 원이 그의 몸값이었다.
이때부터 조롱과 비난 여론이 쇄도했다. 몸값을 두고 오버페이라는 얘기가 나온 건 물론이다. 가장 주를 이룬 건 김현수의 발언에서 오는 부메랑이었다.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진출 직전 '한국에 돌아온다면 실패자'라는 발언을 남겼다. 그리고 2년 만에 귀국했다. 그의 표현대로면 김현수는 실패자다.
#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
독특한 투구폼으로 더 잘 알려진 노모 히데오(50)는 1995년부터 LA 다저스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이어 뉴욕 메츠와 밀워키 등을 거쳐 2005년, 탬파베이에서 방출됐다.
노모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패전처리 투수라도 좋으니 메이저리그에서 다시 뛰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2006시즌, 일본에서 러브콜을 보냈음에도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독립리그에서 꿈을 키웠다. 이런 노모를 향해 비아냥대는 이들이 많았다고. 노모는 "야구가 좋아서 도전하는 것이다"라며 "소시민은 도전하는 자를 항상 비웃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노모는 2년의 공백 끝에 2008년, 캔자스시티와 계약했다. 3년 만에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다시 오른 것.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자신의 목표를 이뤘기에 미련 없이 미국 생활을 포기할 수 있었다.
# '타격 기계'는 다시 예열 중
다시 말하지만, 김현수의 표현대로면 그는 실패자다. 그렇다고 그를 실패자라고 마냥 손가락질할 수만은 없다. 그는 노모의 말처럼 야구가 좋아서 도전했고, 꿈의 무대를 밟았다. 소득도 분명하다. 과거 지나치게 타격폼에만 의존했다면 이제 이 부분을 내려놨다.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고 본인만의 루틴을 완벽히 확립했다. 미국 생활 2년 소득을 꼽으라했을 때, 김현수가 주저 없이 답했던 이유다. 뭔가를 얻었기 때문에 그를 실패자라고 치부하기란 어렵다.
그는 지난 2년간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전체적인 결과는 아쉬워도 세계 최정상급 투수들과 겨뤄봤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다'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그 무대를 밟는 꿈만큼은 분명히 이뤄냈다. 도전하는 자를 애써 비웃을 필요는 없다.
김현수도 본인의 '실패자' 발언을 반성하고 있다. "철없을 때 뱉은 말이다. 말이 너무 섣불렀다. 뱉었으면 어떻게든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로 인한 비난의 여론은 전부 본인이 감내하겠다는 각오다. 금액적인 부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최형우(KIA)만 해도 4년 총액 100억 원을 두고 '거품' 논란이 일었지만,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여론을 바꿨다. 김현수 향한 비난의 화살은 그가 4년간 '돈값'을 못했을 때 겨눠져도 늦지 않다. 이는 김현수는 물론 황재균, 박병호 등 'ML 유턴파' 모두 마찬가지다.
김현수의 꿈은 바뀌었다. 2015년, 두산 시절 우승했을 때 생애 최고로 행복했다는 그는 이제 LG에서 다시 우승을 바라고 있다. 타격 기계는 다시 예열 중이다. 미국 진출이라는 꿈을 이룬 그가 또 다른 꿈까지 현실로 바꿀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때도 김현수는 실패자일까? /ing@osen.co.kr
[사진] 파파고(미 애리조나주)=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