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전혀 못하는 60대 한국인과 우리말이 낯선 30대 미국인. 이들이 완벽히 소통할 수 있을까? 야구는 그걸 가능하게 했다.
미 '야후스포츠' 야구 컬럼니스트 제프 파산은 회사 방침상 평창 동계올림픽 취재를 위해 파견 근무를 나왔다. 그는 본업인 야구를 잠시 미뤄두고 3주간 평창 동계올림픽 취재에 매진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밤, 60대 한국인 택시기사와 야구로 하나가 됐다.
한국의 택시는 보통 기사 포함 5명이 정원이다. 승객은 4명이 최대. 하지만 이를 몰랐던 파산과 그의 일행은 어떻게든 택시에 탔고, 으레 그렇듯 택시기사가 발끈했다. 험악한 분위기에서 이들을 묶은 건 야구였다. 그는 이 흥미로운 경험을 SNS에 남겼다. "야구라는 통역 덕분에 가능했다. 평창과 서울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파산의 트윗을 1인칭 시점으로 각색해 전한다.
평창 올림픽 취재를 마친 뒤 서울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미국인 세 명과 한국인 한 명을 만나 홍익대학교 주변에서 시간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다섯 명이 택시에 비집고 들어가자 기사가 굉장히 화를 냈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의 태도에 우리는 침묵을 지켰다. 마지못해 운전한 그는 나머지 네 명을 내려준 뒤 내 숙소로 향했다.
그가 갑자기 "USA?"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프로 베이스볼?"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잠시 멈칫했다. 서울서 잡은 택시 안, '프로야구'라는 단어를 들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내 직업이 야구 기자라고 애써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랜디 존슨?"이라고 반문했다. 놀라는 내게 그는 "랜디 존슨, 패스트볼"이라고 외쳤다. 공 던지는 시늉을 하더니 폭발음을 냈다. 존슨이 속구로 비둘기를 산산조각낸 상황 묘사가 분명했다. 그 택시 기사는 이어 커트 실링의 이름을 댔다. 그가 존슨과 실링을 어떻게 아는 걸까. 2001년 애리조나가 우승했을 때 마무리 투수가 한국인 김병현임을 깨닫자 궁금증이 사라졌다.
그는 새미 소사와 켄 그리피 주니어의 이름까지 댔다. 김병현이 뛰던 시절, 메이저리그 최고 스타들이었다. 내가 소사의 최근 사진을 보여주자 다소 놀라는 반응이었다. 흥미가 돋아 마이크 트라웃, 브라이스 하퍼, 애런 저지의 이름까지 댔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눈치였다. 그가 알고 있는 현역 선수는 클레이튼 커쇼가 유일했다. 아마 류현진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영어를 거의 몰랐고, 내 한국어 실력은 더욱 초라했다. 하지만 15분간 완전히 다른 언어로 실제 대화를 나눴다. 프로야구는 우리의 유일한 통역이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국제화에 신경쓰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올림픽은 물론 축구, 농구, 심지어 야구도 통역 역할을 할 수 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다시 야구 취재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대단한 올림픽을 치른 평창과 잊지 못할 밤을 선물한 서울에게 감사를 전한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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